신호만 기다렸는데
뛸 준비를 한다.
신발끈을 단단히 조여 맨다.
손목과 발목을 가볍게 풀어주고, 기지개도 쭉 켜며 스트레칭도 한다.
코와 입으로 숨을 고르며 달릴 준비를 한다.
이제 곳 '탕'하고 출발신호가 들리면 최선의 컨디션으로 달려 나갈 생각이다.
정적.
뭔가 이상하다. 시간이 이미 한참 흐른 것 같은데 출발신호가 울리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저만치 앞에 달려 나가고 있다.
내가 무언가 단단히 착각한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일단 한걸음 디뎠다.
삶이란 게 꼭 이런 느낌이다.
출발신호에 맞춰 뛰려고 준비해 왔는데, 경주는 이미 옛적에 시작했었고 출발선은 내가 깨닫기도 전에 지나왔단 사실. 또, 사람마다 출발선도 제각기 달랐다.
그동안 모든 게 준비과정인 줄 알았다.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하고,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면서 뭔가를 준비했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이미 출발선을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인생은 단거리 경주도 마라톤도 아닌 것도 알게 되었단 사실이다.
출발선이 각자 다르 듯, 결승선도 모두가 다 다른 것 같다. 경쟁이 아니다.
또, 이 레이스는 타임어택이 아니다. 뛸 땐 뛰고, 걷고 싶을 때 걸어도 된다. 잠시 한 눈을 팔 수도 있는 것이고, 직선으로 달리던, 지그재그로 달리던 마음대로 코스를 정해 뛰면 된다. 처음 생각했던 길과 다르더라도 정해진 경로가 없으므로, 이탈할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뛰는 것.
고개를 돌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뛰는 주변 사람들을 본다. 학창 시절 때부터 함께 뛰어온 친구들, 최근 직장에서 만나 비슷한 코스를 달리는 동료들, 지금 시야엔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 뛰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서로 조금 챙기면서 뛴다면 조금 더 즐겁게 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