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rious Apr 22. 2024

당신의 Custom은 Kook Rule로 대체되었다?

규칙, 관습, 불문율, 국룰, 소신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상 귀로는 들어본 기억이 없는 표현. 그리고 사람은 원래 법 없이 살 수 있다. 인류는 진화를 거듭하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 훨씬 전부터 무리생활을 하던 동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법은커녕 종교적인 계율, 도덕적인 규범 따위가 있기 훨씬 전부터 서로를 때려죽이지 않고 나름 잘 어울려가며 살아왔다. 물론 이러한 관습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때려죽여진 자들은 굉장히 많았겠지만.


'별다른 상의 없이, 그냥 어느새부터인가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할 그 무언가'를 우리는 관습이라고 부르지 싶다. 그리고 '관습'과 같은 '골이 따분한' 주제가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번뜩이게 된 시점은 출근길 지옥철 속에서였다.


출근 시간의 1호선 상행 열차는 그 자체로 이미 지옥이다. 지옥행이 아니라 지옥, 그중에서도 미움과 시기가 넘치는 수라계(修羅界)다. 그리고 그 속에 발을 딛인 당신도 이미 아수라다.


부천역에서 용산행 급행열차를 타고, 숨 막히는 압박감 속에서 '아수라발발타, 아수라발발타'를 되뇌다 보면, 환승역인 신도림역에서 삼분지일 정도의 사람들이 하차한다. 축하한다. 당신은 방금 수라계를 지났다. 하지만, 수라계를 지났어도 이곳은 아직 아귀계(餓鬼界)란 이름의 새로운 지옥이다.


아귀는 끊임없는 탐욕에 젖은 존재들이다. 발 디들 틈도 없던 수라계의 지옥철이 지나갔지만, 이제 남은 것은 한정된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무언의 경쟁. 손잡이를 잡고 선 당신,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몸짓 하나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가방을 걸쳐 매는 것, 점퍼의 지퍼를 올리는 것, 이어폰을 빼 케이스에 넣는 것 등 사소한 행동들 모두가 '이 사람 곧 내린다'는 신호로 읽힌다. 


하지만, 그 사람이 이내 곧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 것을 보면, 이름 모를 그 사람이 그렇게나 미울 수가 없다. 지옥철에 발은 디딘 당신이 곧 이미 수라요, 아귀요, 축생이다. 


만고의 시간이 흐르고 노량진역에 도착한다. 수험생, 고시생, 환승객들이 우르르 열차에서 내린다. 내 앞에 앉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젊은 남성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마음속으로 '꼭 합격하세요!'를 외치며 앉을 준비를 한다. 하지만 웬걸, 그가 일어서기 무섭게, 어디선가 나타난 한 중년 여성이 후다닥 달려와 턱 앉는다. 


'아니,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자리에 앉는 게 국룰 아니야?'


국룰 아니다. 아무도 그런 규칙을 정한 적 없다. 관습과 불문율은 사회구성원이 모두 내재하고 있어야만 제 기능을 한다. 내 자리(가 될 뻔한 것)를 차지한 이 아주머니는 한 톨의 망설임도 없었고, 뻔뻔하지 않은 얼굴에는 안도감만이 피어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 등이 굽은 할머니가 열차에 탑승한다.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할머니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 아주머니에게 있어 지하철 관습은, '민첩한 사람' 그리고 '연장자'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국룰'보다 그녀의 '상식'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은 어느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간다.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다른 인종과 국적, 종교와 신념, 성별, 세대가 살아오며 체득한 가치관이 다르기에 딱딱했던 '불문율'과 '관습'이 물렁해지고 있다. 


이제 곧 그러한 시대가 올 것 같다. 다른이들에게 굴하지 않고살아가는 사람들을 '눈치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게, 소신 껏 살아가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그러한 날들이.

작가의 이전글 스웨덴 사람 이삭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