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rious May 08. 2024

이탈리아 사람 디에고의 이야기

가장 깊은 두려움 (2)

바르샤바의 4월은 아직 쌀쌀하다.


밀라노의 따뜻했던 햇살에 익숙해진 내게 회색구름에서 부슬부슬 떨어지던 빗방울이, 매서운 바람과 함께 눈두덩이를 적셨다. 내 옆에 나란히 선 디에고의 눈 두 덩이도 젖어 있었다.


폴란드 바르샤바. 첫 방문인 나와는 달리, 디에고에게는 추억이 담긴 장소이다. 밀라노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주 석사졸업을 마치고 나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대학원 생활 1년간 폴란드에서 유학하며 크라쿠프와 바르샤바를 오가던 그는, '폴란드 혁명과 경제사'를 석사논문의 주제로 삼았고, 수석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우리의 목적지는 리투아니아 빌뉴스였지만, 부활절 기간을 맞아 직항 항공편의 가격이 비쌌으므로 바르샤바에서 며칠간 머물다, 버스를 통해 국경을 넘을 예정이었다. 내게 폴란드는 그저 거쳐가는 장소였지만, 디에고에게는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교제의 시작으로 삼거나, 교류의 끝마침으로 삼아야 할 사람이.


폴란드에서의 마지막날 밤. 우리는 잠옷차림 위에 코트를 걸친 채 발코니로 나와 담배를 태웠다. 발코니에 마주 선 우리 두 사람 앞에는 바르샤바 중앙역 너머로 보이는 문화과학궁전이 우뚝 서 있었다. 내 눈에는 근사해 보이는 건물이었으나, 폴란드 사람들은 저 건물을 싫어한다고 한다. 스탈린의 선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모를 담배를 태우던 디에고의 얼굴은 붉은빛을 띠었다. 살짝 부은 저 눈가를 적신 것은 아마 부슬비만은 아닐 것이다. 불쌍한 녀석.


우리는 여러 주제를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고, 대화거리가 끊겼던 나는 아껴왔던 질문을 '툭' 던졌다. 여행기간 마주쳐온 사람들에게 물어왔던 그 질문을.


"네게 가장 큰 두려움은 뭐야?"

디에고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마디를 되물었고, 나는 질문을 보완했다.

"네 삶에서, 의식과 무의식에서,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것이 뭐야?"


"딱히 없어." - 조금은 맥 빠지는 답변이었다.

"두려움이 없지는 않지. 그때그때 닥쳐온 상황에 맞춰 두려움도 찾아오니까."

말을 마친 디에고는 헤이즐넛맛 소플리차 보드카를 홀짝였고, 나는 설명을 요구했다.

  

"석사졸업을 마친 나도 -마치 지금의 너처럼- 백수다. 수석졸업을 해도 삶의 뱡향이 불분명한 건 마찬가지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우리는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없다. 어느 갑자기 닥쳐온 병마, 사고, 죽음..." 


디에고의 두려움은 삶의 불확실성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해서 이끌려 가버리는 것'.

내 친구는, 그러한 상시적이고 근원적인 두려움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디에고, 누구보다 이탈리아인인 그는 -스스로는 '밀라노인'으로 불리길 선호하지만- 현실에 충실하다. 하루하루의 삶을 정열적으로 살아간다.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마음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앞에서, 당장의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는 은 자못 합리적이다. 그는 술과, 담배와,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며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그러한 것들에 내어주지 않는다. 그러한 즐거움에 이끌려가는 것이, 삶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에 이끌려가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카르페 디엠. 욜로. '현생'을 사는, 지금을 살아가는 그를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갈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Custom은 Kook Rule로 대체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