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윈터 Aug 01. 2022

도망치고 싶은 새벽

가끔은 도망치고 싶은 새벽을 맞이한다. 주로 출발지도 목적지도 생각하지 않는 이상한 도망이다. 혼자는 겁이 나니 누군가의 손을 맞잡고 도망가고 싶다. 그 누군가는 아마도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 그러니 아무나는 싫다.


차가운 밤공기를 헤치고 불쑥, 나랑 도망가자 청하는 나를 보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겨우겨우 당신의 눈치를 보는 나를 보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구태여 물어보지 않는 당신. 묻지도 않고 먼저 앞장서주는. 그런 당신을 너무도 사랑해서.


가끔은 울면서 모든 걸 벗어던지고 뛰쳐나가기도, 어떤 때는 흐르는 물길에 몸을 맡기듯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때로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작게 미소를 지으며 성큼 앞으로 전진해버리는 것.


그러기에 조용한 새벽은 도망에 안성맞춤이다. 진한 검정의 어둠 속으로 나의 표정은 덮여지고, 멀리멀리 나아가는 움직임만이 결국엔 남게 되는 그런 시간. 나는 도망치고 싶은 새벽이 찾아올 때마다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다 그 상상을 지우고 다시 똑같은 상상 속에 빠져든다. 나의 도망에 함께 할 당신의 눈썹, 콧날, 입꼬리, 눈물점 하나, 아니 두 개..


당신은 왈츠를 잘 추는 사람일 것이다. 나의 도망에는 왈츠가 필수적이다. 세상 뒤편까지 달려가다 어쩔 수 없이 숨이 막히는 순간에 그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고향에 눈이 오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