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카페에 치즈색 고양이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길에서 살던 고양이가 카페 한 켠에, 그것도 입구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들락날락 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그 고양이는 깔아둔 담요같은 무언가에 앉아있다 사람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사람들을 피해 요리조리 숨었다. 한 번은 카페 바깥으로, 다른 한 번은 카페 안으로. 늘 찾아올 때마다 길고양이들을 위한 밥이 바깥에 놓여져 있던 카페였다. 그러나 이렇게 고양이가 카페 안으로 들어온 적은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만지고 어화둥둥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냥 멀찍이서 바라만 보았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고양이에 대해 잘은 모른다. 그저 인터넷에 넘쳐나는 지식 중에 몇 가지를 주워 들었을 뿐이다. 실제로 키워보면 많은 부분이 다름을 알고 있다. 내가 보는 고양이란 경계심 많고 꽤나 도도하면서도, 어쩔 때는 제법 살가워지는 아이들. 참 고양이한테 두 번 물려보았다. 둘 다 다른 사람이 키우는 고양이였는데, 공통된 사유는 너무 많은 사랑을, 그것도 서투르게 주어서 인 것 같다. 갑자기 무릎 위에 올라오길래 쓰다듬어 달라는 줄 알고 계속 쓰다듬어 주었더니 어느 순간 손등을 깨물고 내려갔다. 그게 내가 고양이한테 처음 물린 순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고양이가 원하는 것을 잘못 해석했다고. 그야말로 고양이에 대해 잘 몰라서 생긴 일이었다.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다. 하지만 혼자 살고 출퇴근 시간은 늘 불규칙할 게 뻔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낄 뿐이다. 언젠가 다른 사람과 집을 합치게 되면, 그래서 번갈아가며 고양이를 돌볼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꼭 데려올 것이다. 나는 유독 치즈색 고양이를 참 좋아하는데 그것도 얼굴 큼지막하고 동글동글하고 약간 못생기기까지 한 그런 아이들이 내 눈에는 제일 사랑스러워 보인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고양이 세계에서는 그런 고양이가 미남이랬나 대장이랬나.. 아무튼 그렇다고 들었는데.
글을 쓰고 있으니 어느새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다. 대신 빛이 나의 테이블 위를 비추고 그 위로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쌓여 있다. 바람에 그림자가 흔들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고양이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바람이 제집없이 오고 가듯 고양이도 그러할 것이다. 다음에 그 고양이를 만난다면 조심스레 춤을 청해보아야지. 바람이 너무 좋지 않니, 이름 모를 고양아. 바람에 맞춰 흔들리며 춤을 추자. 그러면 고양이는 뭐라 대답할까? 날 위아래로 살펴보곤 손등을 깨물며 심통을 부릴까. 아니면 꼬질한 앞발을 조심스레 내밀며 수염을 까딱일지도. 밑져야 본전이니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 때는 눈빛으로 청해볼 것이다, 봄날의 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