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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태 Apr 11. 2022

멈추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아픈데도 불구하고, 확진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유가 생길때,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최근에 만났던, 존경하는 선배님들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그 자리에서도 이 말이 이해 됐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유를 갖게 되니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깊게 느끼는 지금에 비하면 감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으리라.


지난 1년동안 매일이 나에게 새로운 전쟁의 연속이였다.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채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했고, '자격'에 대한 중압감과 꿈 때문에 쉬지 않고 운동하고 공부를 해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로운걸 배우고자 먼 길을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미친듯이 하루 하루를 보내다보니, 여전히 한참 부족한 수준이긴 하나 동나이대 친구들 사이에서는 수십 걸음은 먼저 앞설 수 있게 되었다. 입시를 3년 하느라 앞으로 뭘 해도 뒤쳐질꺼라고 우려하고 체념했던 어리석었던 나에게 하나님은 감사한 기회들을 허락해주셨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멀리 왔지만, 그 과정 속에 '노력'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당연했던 일상생활을 나는 거의 모두 꿈을 위해 헌납해야했다. 그 뿐인가. 내가 잠깐 휴식을 취하더라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때도, 나는 여전히 중압감과 부담감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있었다. 남들처럼 연애에 대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내 마음에 둘 공간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여자가 없었던건 아니지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자유롭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누구보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게으르고, 자유롭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 글을 작성하는 현 시각 새벽 4시. 치열한 다음 날의 일정들을 소화하기 위해 진작에 잠들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때로는 기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밤을 지새우고 있다. 이전처럼 생각이 많아서 밤을 지새우는 것도 아니며, 할 일이 많아서도 아니다. 그저 밤늦게까지 게임하다가 이 시간까지 드라마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안하다.

과거의 나는 늘 놀고 먹고 자는 것이 당연했었다. 게으르면서 웃기게도 미래를 걱정하던 나였지만, 지금은 게으른데도 그런 걱정이 없다. 정말 편안하다. 신경써야할 여자친구도 없거니와, 그런 인간관계도 없다. 당장 다음달이 대회지만, 약 효과를 위해 식단을 잠시 멈추고 부모님이 갖고 오시는 것들은 다 먹고 있다. 살이야 찌겠지만, 격리 끝나면 다시 미친듯이 관리 해야만 하기 때문에 지금은 상관 없다.


행복하다.

하루종일 흐뭇했다.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도 배시시 웃고 있다. 정말 행복하다. 평생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나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살며 쉴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빠른감기로 흘러가는 삶의 장면들은 그 내용을 누구보다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하지만, 한 장면마다 숨겨진 의미와 감동을 모두 느낄 수는 없으리라. 잔잔한 음악을 이불덮고 잠드는 새벽부터 무거운 눈꺼풀이 스스로 떠지길 원할때 시작하는 하루 속에는 대단해보이지는 않지만 의외로 작은 행복들이 담겨있다. 나갈 일이 없기에 동서남북 뻗쳐있는 머리와 제 마음대로 자라는 수염을 만지며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는 게임부터 해서 밤을 새가며 하는 친한 친구들과의 통화. 엄마아빠가 사온 달달한 도넛츠. 작은 화면 속에 담긴 사람들의 애환의 이야기. 이 모든 것들도 당연한게 아니였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작은 것들이 나에게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이 것들 역시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꿈꿔왔던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과 삶의 균형 따위는 없음을 배웠다. 하지만 내 몸이 바쁘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바빠지게 되면 안된다.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가끔은 귓속에 울리는 노래를 그저 흘려듣지 말고, 가사와 멜로디 하나하나에 집중해보자. 가끔은 할 일을 미뤄두고, 하루종일 게임만 해보자. 가끔은 메시지만 주고 받는 친한 친구와 밤새도록 시덥잖은 이야기로 웃고 떠들며 밤을 지새우자. 4일 뒤에는 다시 바삐 살아가겠지만,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고자 한다. 단순히 놀러가는 그런 휴식 말고,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휴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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