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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태 May 17. 2022

어른들에게도 얼룩이 있다

회사에서 크게 혼난 날, 한심한 나 자신을 돌아본다.

 제는 퇴근하고 나서 회사에서 운동을 하지도 못하고 집으로 왔다. 나는 집 가는 길, 버스 창문에 머리를 걸쳐놓고 길게 늘어져 지나가는 형형색색의 조명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정신없이 사방에서 울려대는 경적소리조차 자기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멍청한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깨우지 못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문제아였다. 어렸을 때는 거짓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았고, 매사에 불성실하고 책임감 없는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내 잘못을 정당화하며 나를 돌아보기를 피했다. 그 덕에 나는 성숙해지기는 커녕 내 좁디좁은 그릇에 더러운 얼룩들을 짙어지게 할 뿐이었다.


내 자존심은 너무 오랫동안 온실 속의 화초로 지냈기 때문에, 뒤늦게 내 모습을 바꿔야 함을 느끼고 온실 밖으로 꺼내기 시작하니 치맛바람에도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태생이 게을렀던 나는 나를 바꾸기를 몇 번씩이나 포기했지만, 어른을 연습하는 지금은 나의 치부를 돌아보고 인정하는 습관을 훈련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내 그릇에 묻어있는 얼룩들은 손으로 아무리 세게 문질러도 닦이지도 않고 오히려 번지기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이가 들수록 혼나는 일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혼날 일들만 늘고 있다.


회사에서 하라는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못해서 크게 데인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 걸 알면서도 오늘따라 그냥 앉아서 어딘지도 모를 종점까지 가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위로라도 받아보고 싶다는 같잖은 마음에 나보다 인생을 몇 년 더 산 주변 어른들에게 연락해서 혼나 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다.

내가 존경하는 어른이 나에게 해준 말씀.

나도 사회에서는 인정받는 '어른'이지만, 나는 아직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뿐이다. 나에게 진짜 어른이란, 무슨 일이든지 멋지게 해내고 실수 하나 없는 나만의 영웅들이다.


'저들은 나처럼 멍청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하기 때문에 저기까지 갈 수 있었겠지.'


사람이 실수를 어떻게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최소한 나처럼 멍청하고 수치스럽게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보였다. 적어도 우러러보는 어른들은 멀리서 보았을 때는 얼룩 하나 없는, 때깔 고은 그릇을 품고 있다. 나는 저들처럼 될 수 없고, 저들도 나 같은 더럽고 한심한 얼룩은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나와 같은 모습을 어른들에게서 조금이라도 찾아서 위안이라도 받고자 하는 가소로운 마음에 문자를 보냈고, 어른들은 늦은 시간에 연락을 한 나의 무례함에도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다. 나는 내 한심함을 읊조리느라 어른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긴 대화를 하지 않았다. 장황한 위로를 굳이 할 것도 없이 어른들은 그저 깔끔해 보이기만 했던 그들의 그릇에 여기저기 묻어있는 얼룩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렇다. 나는 멀리서 봤기 때문에 그들의 더러운 얼룩을 보지 못했다. 어른들의 그릇에도 얼룩들이 있다. 그들은 나처럼 멍청하지 않아서 저편까지 간 것이 아니라, 그들도 나처럼 멍청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우러러보는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이미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던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부끄러움을 느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구나 얼룩이 생길 수 있다. 작든 크든, 지우기 쉽든 어렵든, 너무 더럽고 지저분한 나머지 손 대기조차 꺼려지는 그런 얼룩들. 안 묻게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써도 얼룩은 생긴다. 당장 생긴 얼룩은 빨리 지우고자 비빌수록 번지기만 할 뿐이다. 내 그릇에 묻어있는 얼룩을 다시 한번 본다. 똑같은 모양의 얼룩이 생기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굳어가는 얼룩을 바라보며 나는 당장 비벼서 지우기보다는 어떻게 긁어서 지울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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