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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Oct 15. 2024

시체를 지하실 벽 속에 넣고-<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08번.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등이 담긴 단편집입니다.  단편소설 작가로서의 포는 현대적인 추리소설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마다 서린 광기는 이성으로만은 설명되지 않는 인간 심리의 복합성을 치밀하게 그려냅니다.  보들레르, 브르헤스 등에게 영향을 준 작가입니다.  



   【 어셔가의 몰락 】 -  '나'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친구의 초대로 음침한 '어셔가'저택에 가게 됩니다.  친구의 여동생을 함께 매장한 후, 공포에 휩싸여 지내다  '어셔가'의 몰락을 지켜보게 됩니다.


  *  그 저택이 눈에 띄자마자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우울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내 앞에는 평범한 집과 단순한 정원 - 삭막해 보이는 벽 - 멍한 눈을 연상시키는 창문들 - 무성한 사초들 - 그리고 몇몇 죽은 나무의 하얀 등걸 등이 펼쳐져 있었다.  












*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셔 저택을 볼 때 그런 무기력함에 사로잡혔을까?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예사 공기와는 전혀 다른,  썩어 가는 고목나무와 잿빛 벽, 고요한 못에서 솟아오르는 해롭고 마력적인 안개,  우중충하고 느릿느릿하며 알아보기 힘든 모습의 납빛 안개라고나 할 만한 기운이었다. 


  *  로더릭 어셔를 빼고는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끔찍하게 모습이 변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결코 없었으리라!   (···)송장 같아 보이는 창백한 피부와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눈의 광채로 인해 놀라서 거의 두려운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  그는 자신이 각양각색의 비정상적인 공포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가 죽을 거야.  이 통탄할 만한 어리석음 때문에 죽어 버릴 게 틀림없어,   (···)신체적 위험에 대해서는 겁이 안 나.  그것이 미치는 절대적 영향력,  그러니까 신체적 위험이 내게 불러일으킬 게 틀림없는 공포심이 겁나는 거지."












 *  어셔는 어느 날 저녁 갑작스레 매들라인 아가씨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내게 알려 주면서(여동생을 마지막으로 매장하기 전에) 그녀의 시체를 저택의 주요 벽 안쪽에 있는 지하 납골당 중 한 곳에 이  주 동안 보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죽은 자의 얼굴 위에 떠오른 그 미소는 정말 끔찍했다.  우리는 이내 관 뚜껑을 다시 덮고 못을 박은 뒤 철문을 잠그고 나서 그 지하실에 비해 조금도 더 밝지 않은,  저택의 위층으로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  폭풍 사이로 어디선가 띄엄띄엄 낮고 흐릿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본능적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깜짝 놀라 책 읽기를 멈췄다.  왜냐하면 나직하면서도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그러면서도 귀에 몹시 거슬리는 너무나 기괴한 절규 혹은 쇳소리가 내 귀에 진짜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  어셔는 여전히 앞뒤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말에 깃든 소름 끼치는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난 감히 말할 수 없었어!  우리가 그 애를 산 채로 무덤에 넣었다는 걸!"














 *  그녀가 입은 하얀 수의는 피로 물들어 있었고  수척한 그녀의 몸 군데군데에는 모진 싸움의 흔적이 엿보였다. 그녀는 잠시 동안 몸을 덜덜 떨면서 문턱에 서 있었는데,  몸이 앞뒤로 흔들거렸다.  그런 뒤 낮게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오빠 쪽으로 꽈당 넘어졌고,  다시 격렬한 단발마의 신음과 함께 그를 바닥으로 밀어 시체로, 그가 예견했던 대로 공포의 희생자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그 방을,  그리고 그 저택을 피해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  폭풍우는 사방에서 여전히 무섭게 몰아쳤다.  그 길 위로 갑자기 환한 빛이 사납게 비쳐서 나는 어디서 그렇게 비상한 빛이 나오는가 알아보려고 돌아섰다.   (···)회오리바람의 궤도 전체가 내 눈앞에서 흐트러졌고,  거대한 벽이 사나운 기세로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으며,  내 머릿속도 별안간 어질어질해졌다.  바다의 파도가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한동안 들려왔고,  내 발아래 있던 깊고 축축한 호수가  '어셔가'의 잔해를 삼키며 침울하고 조용하게 닫혔다. 













 【 타원형 초상화 】 -  '나'는 어느 성에서 아름다운 어린 처녀의 초상화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첨탑 방에 갇힌 채 그림의 모델로 죽어간 화가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쓰인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  화가는 매일같이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꾸준히 일했다.  그러다 보니  (···)그 외딴 첨탑 방에 비치는 소름 끼치는 빛으로 인해 새색시인 아내의 건강과 활력이 시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눈을 들어 아내의 표정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화폭에 바른 빛깔이 바로 자신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그녀의 뺨에서 빼앗아 온 것이라는 사실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 


  *  한시도 작품에서 눈을 떼지 않던 그가 점점 몸을 떨다가 얼굴이 창백해지며 아연실색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이 그림은 정말로 생명 그 자체로구나!"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려 아내를 바라보았는데 - 그녀는 죽어 있었다. 















【 붉은 죽음의 가면극 】 - 역병이 온 나라를 파괴해나가자 왕은 기사들과 귀부인 친구 등 원기 왕성한 천 명의 사람들과 안전한 자신의 대사원에 은둔합니다.  어느 날 사원 안의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려 가장무도회를 열게 되지만,  붉은 가면을 쓴 가장 무도자의 등장에 아연실색하고 맙니다.


  *  그 사람은 키가 크고 홀쭉했는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수의로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가면은 딱딱하게 굳은 시체의 표정과 너무나 똑같아서 아무리 꼼꼼히 뜯어봐도 그것이 가면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의 옷 여기저기에 피가 묻어 있었고,  넓은 이마를 비롯한 그의 얼굴 전체에 끔찍한 진홍색 반점이 가득했다. 


  *  양탄자 위로 단도가 번뜩이며 떨어졌고,  곧 그 위로 프로스페로 왕이 축 늘어진 채 죽어 쓰러졌다.   (···)그들은 곧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경악에 사로잡혀 흠칫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칠흑빛 시계의 그림자 안에 미동도 없이 꼿꼿이 서 있던 그의 커다란 몸을 거칠게 붙잡은 순간,  그가 쓴 시체 같은 가면과 무덤에 바르는 회반죽 덩어리 같은 그의 몸 안에 아무런 실체도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붉은 죽음의 역병이 그들 사이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 검은 고양이 】 -  동물을 사랑하는 '나'는 플루토라는 고양이와 몇 해 동안 우정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폭음으로 인해 손찌검을 하게 되고 결국 고양이의 눈을 도려내고 나뭇가지에 목매달아 죽여버리고 맙니다.  어느 날 플루토와 닮은 고양이와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비극이 시작됩니다. 


  *  그날 밤 나는 갑자기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 곁의 커튼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집 전체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내와 하인과 나는 이 대화재에서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  파괴는 완벽했다.  화재는 나의 전 재산을 완전히 삼켜 버렸고 그 이후로 나는 완전히 절망에 빠져 버렸다.


  *  엄청나게 큰 고양이의 모습이 하얀 벽에 엷은 부조처럼 조각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부조는 실로 경이롭다 할 만큼 또렷했다.  그리고 그 짐승의 목에는 밧줄이 둘러져 있었다.  (···)화재 경보가 울리자 정원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들었으니까,  그중 한 사람이 나무에 매달린 줄을 자른 다음 열린 창문을 통해 그 짐승을 내 방으로 던져 넣었던 게 틀림없다.  자고 있던 나를 깨우려고 그랬을 것이다.  다른 벽들이 무너지면서 내 잔혹 행위의 희생자인 고양이의 몸을 짓눌렀고,  고양이는 얼마 전에 바른 회반죽 벽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을 것이다.  












 *  플루토는 몸에 하얀 털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 고양이에게는 형태가 불분명한 아주 큰 하얀 반점이 있어서,  그것이 고양이의 가슴 전체를 거의 다 가리다시피 했다.  (···)그 고양이가 나를 따르는 것이 분명해지자 나는 점점 더 녀석이 싫어지고 녀석에 대해 짜증스러운 감정만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같은 혐오감과 짜증은 점차 더욱더 강렬한 증오로 발전했다.  (···)그 녀석도 플루토처럼 눈을 하나 잃고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 심해진 것이 분명했다.  


  *  어느 날,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아내와 내가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고양이가 가파른 계단을 바짝 뒤따라오는 바람에 나는 거꾸로 넘어질 뻔했고,  그 때문에 미칠 듯이 화가 치솟았다.   (···)도끼가 내가 원한 곳으로 떨어졌다면 고양이는 당장 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손을 들어 가격을 막았다.  (···)그녀는 신음 소리 한번 못 내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  그럴싸한 방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시체를 지하실 벽 속에 넣고 발라 버리는 방법이었다.  (···) 벽 안쪽에다 조심스레 시체를 기대 놓은 뒤 벽돌을 원래 모양대로 다시 쌓아 올렸다. 그러고 나서 석회와 모래와 섬유재를 조심조심 구해서 회반죽을 원래의 것과 구별이 안 될 만큼 똑같이 쑨 뒤 새로 쌓은 벽돌 위에 조심스레 발랐다. 














 *  아내를 죽인 지 나흘째 되던 날, 경찰관 몇 명이 예고 없이 들이닥쳐 집 안팎을 또다시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아무리 철저히 수색한다고 해도 시체를 은닉한 장소가 발각될 염려는 없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  "여러분, 이 집,  이 집은 아주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입니다."  (···)나는 순수한 과시욕에 사로잡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지하실의 벽 중에서도 내 소중한 아내의 시체를 넣어 놓은 바로 그 지점을 탕탕 두들겼다.  (···)갑자기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 무덤 속으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처럼 낮고 단속적이다가,  이내 길고 요란하며 지속적이면서도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소리 같지 않은 큰 고함 소리로 변했다.


  *  열두개의 건장한 팔이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벽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이미 엄청나게 썩어 들어간,  굳은 피가 여기저기 얼룩진 시체가 똑바로 선 채 목격자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의 머리 위에는 붉은 입을 활짝 벌리고 이글거리는 외눈을 한 그 가증스러운 짐승이 앉아 있었다.   (···)내가 그 괴물을 무덤 속에 넣고 벽을 발라 버렸던 것이다!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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