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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Oct 11. 2024

거짓말과 신화의 차이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키메라>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40번.




  






   작가 존 바스는 「천일야화」에서 이야기꾼의 원형을 발견하고,  소재와 형식이 고갈된 현실에서 글을 써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죽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계속 해야만 하는 셰헤라자데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야기하기에 관한 이야기로, 뉴스워크는 "진기하고도 의미심장한 책"이라고 평합니다.

 

【 두냐자디아드 】 - 두냐자데는 「천일야화」의 화자인 셰헤라자데의 동생입니다.  언니가 미래에서 온 작가 마신의 도움으로, 왕에게 매일 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을 전달해줍니다.  

  *  난 평소처럼 언니의 이야기에 끼어들었어요.  "언니는 정말 이야기를 할 줄 알아.  셰헤라자데.  내가 밤마다 언니의 침대 발치에 앉아 언니가 왕과 사랑을 나누고 그분께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을 지켜본 지 오늘로 천 일째야. "












  *  매일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 보물 열쇠를 쓰지 않고 아껴 둬요.  그녀의 이야기는 그 열쇠와 함께 시작하고 끝나죠.  삼 년 하고도 넉 달 전,  샤리알 왕이 매일 밤 숫처녀를 강간한 뒤 다음 날 아침에 죽이는 일을  반복할 무렵,  (···)언니는 마지막 학기를 남겨 두고 학교를 중퇴하고 말았어요.  샤리알이 우리의  자매들을 전부 죽이고 나라를 파멸로 몰아넣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모든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서였죠. 

  *  "나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다 그만두었어요.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었죠.  나의 이름은 그저 글자들을 뒤섞어 놓은 것뿐입니다 문학 전체가 그렇죠.  일련의 글자들과 빈 공간들이 늘어선 일종의 암호 같은 것인데 난 그 암호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렸어요."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 이상한 렌즈들을 콧마루 위로 치켜 올리고는 씩 웃었어요.













  *  마신이 외쳤어요.  "그러니까 당신 말은 당신이 아직 천 일하고도 하룻밤의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인지요?"  셰리가 엄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천 일 밤은 우리의 돼지 같은 왕이 순결한 이슬람의 딸들을 죽여 온 시간이에요."

  *  달이 가고 해가 갔어요.  밤에는 샤리알의 침대발치에서,  낮에는 셰헤라자데의 침대 안에서,  나는 사랑을 나누는 기술과 이야기하는 기술에 대해 내가 알게 되리라 상상한 것보다 더욱 많이 배우게 되었죠.    (···)셰리가 내게 키스한 뒤 말했어요.  (···)"사랑을 나누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두 경우 모두 기교 이상의 무엇이 필요해.  하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교에 대한 것만이야."

  *  "셰헤라자데를 만나기 전,  샤리알은 천 일 동안 하룻밤에 처녀 한 명씩 강간하고 죽였죠.   (···)그를 즐겁게 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작정인가요.  작은 누이여?  더욱 흥미를 끄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  그런 건 없어요!  셰헤라자데처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가 이미 다 들은 얘기죠!  두냐자데!  두냐자데!  누가 당신이 할 이야기를 알려 줄 수 있을까요?"    (···)언니는 마신에게 부디 날 놀라게 하는 일을 그만둬 달라고 간청했어요. 













*  동생아,  옷을 벗고 뒤로 반듯이 누워 군침을 흘리는 그를 묶어 놓은 후에, 네 일곱 번째 가운의 왼쪽 주머니에서 내가 미리 그곳에 숨겨 놓은 면도용 칼을 꺼내렴.  그때 나 역시 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낼 테니.  그리고 그 짐승을 거세하는 거야!  그의 연장을 잘라 피범벅인 그것을 입에 틀어넣어 그를 질식시켜 버려.  나 역시 샤리알에게 그렇게 할 거야!  그런  다음 우리의 목에도 구멍을 내야 해.   (···)당신의 형은 이미 그곳이 잘렸을 거예요.  언니도 죽었겠죠.  이제 우리가 그들과 합류할 시간이에요. 

  *  사랑이 덧없다고 한 셰헤라자데의 생각은 옳다.  그러나 삶도 그에 못지않게 덧없다.  사랑과 삶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영원할 것처럼 향유할 때 더욱 달콤하다. 

  *  만일 내가 그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어린 두냐자데와 그녀의 신랑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들은 어느 어두운  하룻밤 동안 천 일을 보내고 아침에 서로 포옹한다.  (···)이 대단원을 기쁜 마음으로 온전히 수용한다면 분명 보물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물을 여는 열쇠는, 보물과 열쇠가 동일한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 벨레로포니아드 】 -  청년 시절 페가수스를 타고 키메라를 퇴치했던 벨레로폰은 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추락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어느 습지와 충돌하려는 찰나 「벨레로포니아드」라는 책의  글자와 문장과 페이지로 변해버리고,  자신의 인생이 허구였음을 알게 됩니다. 

  *  어떤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보다 오래 가는 법이다. 

  *  이미 내가 쓰려고 마음먹었던 내용의 반을 잊어버렸다.  펜이 따라와 주질 못한다.  나는 미친 듯이 여백에다 무언가를 써 넣는다. 

  *  안테이아가 외쳤어.   "빌어먹을 반의반신 아기를 낳는 거야.  무슨 상관이야?  심지어 팔분의 일이라도 아예 신의 피가 섞이지 않는 것보다 낫지!"   (···)하지만 나는 그저 반의반신은 유전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었어.   (···)"보시다시피 반의반신이라는 건 발생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알아차렸겠지만,  첫 번째 혹은 상위 집단이 교접해 낳은 결과물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반면,  두 번째 혹은 하위 집단의 그것은 확률상의 예측입니다."













*  어떤 문학 고전도 다른 문학 고전과 꼭 같지는 않은 것처럼  어떤 고전 영웅도 다른 고전 영웅의 전기적 사실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왕의 시간표를 지지했어.  특수한 차이들은 충분히 무시해야만 패턴과 같은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거였지. 

  *  프라이타크의 황금 삼각은 발단, 전개, 대단원의 상대적인 비율,  혼란과 절정의 정밀한 위치와 정도,  내부 서사와 틀 서사의 관계 등을 정확히 규정했다.   (···)만약 컴퓨터 자체가 내 예언자가 미래에 변형된 어떤 것이 아니라 해도,  폴리이도스가 그 영웅들을 위한 패턴이라는 것을 그에게서 표절한 것은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잔뜩 흥분한 채 그의 기술 부록과 카탈로그들 사이에 혹 그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뒤져 보았지만  허사였다.














 *  "내 인생은 실패요."  나는 그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난 신화의 영웅이 아니야.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하겠지.  내 나이 이미 마흔이오.  나는 죽을 테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잊히겠지."

  *  "난 정말로 키메라를 죽였소.  그건 정말 실존해요,  안테이아.  나는 연기와 불꽃을 보았소······."  나는 몹시 당황하여 주장했다.   (···)"넌 애초에 그것을 결코 성취한 적이 없어. "  (···)그녀는 앞서 궁정 근위병들이 내게서 압류한 폴리이도스의 문서를 내던졌다.   "떳떳지 못한 마음 때문이었지.  네 인생은 허구(fiction)야."

  *  "솔직히 말해, 당신의 인생 이야기 안에서 신화적 영웅이 되고 불멸을 얻는 것 등등이 분명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일 것임을 믿어요.  그것의 진가를 정말로 인정한다고요.  하지만 나는 활동을 사랑해요.  (···)나는 활동적인 삶에 익숙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전혀 하고 있지를 않아요!  













  *  "만약 당신의 불멸성이 이 작품에 달려 있다면 당신은 가망이 없네요."   불쾌한 밤이었다.  나는 거짓말과 신화의 차이를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 자신도 그것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나 자신의 영웅이기를 그만두고,  존재하는 것조차 그만두고,  심지어 어떤 식으로든 지금껏 존재해 온 것까지 그만둘 만큼 신화가 특정한 사람보다 훨씬 더 진실에 가깝고 더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   죽을 운명을 타고 난 인간이 가지는 불멸성에 대한 욕망과,  특히 신화적 영웅이 생애 후반부에 스스로 자기  자신의 목소리나 삶의 이야기 혹은 둘 다로 변신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불멸성을 제한적으로나마 성취하는 경우입니다.    ?

  *  우리가  '페르세우스',  '메두사',  '페가수스'라고 부르는 그러한 패턴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는 좀처럼 상상할 수가 없지.  종이 위에 글자로 표현된,  그것과 대응되는 인물들은 물론이고 말이오.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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