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52번.
카를로스 푸엔데스는 이 작품을 일컬어 '폭력이라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살벌한 사회를 찍은 엑스레이 사진'이라고 밝힙니다. 우리에 갇힌 다섯 마리 호랑이들 중에서 네 마리가 단합하여 한 마리를 잡아먹는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 작품은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신화 속 카스토르와 폴룩스, 성경 속 카인과 아벨을 등장시켜 그에 대한 답을 그려냅니다.
<< 여호수아 나달의 시선 >> - 법대에 진학한 여호수아는 교도소 실습을 통해 어두운 사회면과 만나게 됩니다. 아순타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지만 예리고 또한 아순타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둘은 원수지간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대부호 몬로이의 숨겨진 세 아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 나는 나 자신의 절망을 위해 노력한다. 나는 지금 여기서 과거를 욕망하는 동시에 미래를 기억한다. 과거를 욕망하다. 미래를 기억하다.
* 모든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모든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제는 벽장도 없고, 벽장에 숨겨진 시체도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사생활의 찌꺼기를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 카메라의 눈은 우리의 사생활을 노리며, 오늘날에는 카메라가 최고종교재판관이다.
* '신앙은 믿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이다.' (···)우주적인 삶에 대한 확신과 같이 신앙을 진보 프로젝트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항상 앞을 향해 나간다.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인류의 발전은 필연이며 항상 위로 상승한다.
* "각하께서 직접 요리하십시오. 요리사가 많으면 요리를 망칩니다. 각하의 원수들을 아주 멀리 떨어진 나라의 대사로 보내십시오. 각하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리고는 이와 비슷한 말로 대통령을 사로잡아 갔다. 때로는 위협했고 때로는 격려했고 경우에 따라 결론을 내리기도 했고, 때로는 경고하기도 했고, 증거를 내세우기도 했다.
* 나는 몇 년 동안 예리고를 보지 못했고, 그가 어디서 살았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살았다는 그의 말은 어느 모로 보나 거짓이 분명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빛의 도시 파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파리에 대해서는 그저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언급할 뿐이었지만, 그에 반해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미국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만들었다.
* "예리고, 대중이 너를 따를 것이라고, 진정으로 그렇게 믿는 거야?" (···)예리고가 얼굴을 붉혔다. 그의 눈에서 미쳐 버린 무언가를 발견했다. 마치 나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말에 복종할 거야.
* 나는 곧은 시선이 진실에 대한 보증, 확신에 대한 등대라도 되는 듯 예리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들에게는 솔직함, 겸손함, 이해, 우정을 동반한 곧은 시선이 거짓, 자만, 고집, 적의의 가면이라는 사실을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그것을 알아내야만 했다.
* 나는 우리의 과거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이 우리가 어렸을 때 학교에 다니던 바로 그 순간이라고 고집스럽게 생각해 왔다. 우정이 우리의 존재 이유였다. 예리고와 나 사이에 우정 관계가 탄생했다는 믿음이 우리의 존재 이유였다. (···)예리고와 나는 카스토르와 폴룩스였고, 의지와 운명을 찾아 영원히 탐험을 계속하는 원정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 이제 나는 예리고의 실패가 나의 실패라도 되는 것처럼 심오한 고통에 귀를 기울였고, 생각했고, 보았고, 느꼈다. 마치 우리 둘이서 위대한 지적인 꿈을, 너무나 지적이어서 현실의 증거를 용납할 수 없는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내 친구와 나는 고작해야 무정부주의의 추종자였을 뿐 혁명의 예술가는 결코 아니었단 말인가? 우리가 읽고, 듣고, 모방한 사상을 실행에 옮기면 그 모든 가치를 다 잃고 만단 말인가? 우리는 사상과 삶을 그렇게나 혼돈하고 살았단 말인가? 사상은 삶의 입김을 견디지 못한단 말인가? 사상은 현실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산산이 부서지는 먼지로 만든 조각상이란 말인가? 우리가 공연한 꿈을 꾸었단 말인가?
* 예리고와 나는 토마스 아퀴나스 추종자도 아니었고 허무주의자도 아니었다. 흥미로운 점은 필로파테르 신부가 스피노자에게서 도그마와 반항 사이의 균형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신부는 간단하게 이렇게 주장했다. 지식의 이데올로기는 지식 그 자체보다 선행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진리는 선언문이 없어도 스스로 드러나지. 어둠을 몰아내는 빛처럼. 빛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을 선전하지 않아. 생각도 마찬가지야. 오로지 어둠만이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지." 필로파테르 신부의 태도가 도그마에 반하는 것이었을까?
* 나는 더듬거렸다. "나는 배신자가 아냐. 나는 정부에서 일하지 않아. (···)나는 네 친구야. 배신자도 공범도 아냐." (···)그는 내가 밀고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의 우정을 이용했다. 우정을 희생시켰던 걸까? 나는 어둠 속에 갇힌 예리고를 보며 그 생각을 털어 버렸다. 권력을 잡겠다는 그의 백일몽은 실패로 돌아갔다.
* 예리고가 옳았다. (···)정보와 전지전능한 권력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혁명은 불가능한 일이다. 날마다 조지 오웰의 「1984」가 실현되고 있다. 드라마도 없고, 불필요한 상징도 없고, 전체주의적인 잔인함도 없다. 그 대신 모든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위장되어 있고, 하얀 장갑과 함께 거세 기술에 길들여져 있다.
* 어떤 경우라도 영혼이 기억을 통과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자극이 필요하다. 기억은 단지 한순간을 포착해 그 순간을 즉시 되돌려 줄 뿐이다. 기억은 흉터와 같은 게 아닐까? 나 자신이 알아보지 못하는 과거가 아닐까? 만일 내가 그걸 모른다면 어떻게 그걸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기억이란 단지 일종의 모의실험, 즉 우리가 잊어버린, 혹은 더욱더 좋지 않을 경우, 우리가 결코 살아보지 못한 것을 기억해 내는 그런 게 아닐까?
*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형제애는 경쟁심으로, 카인과 아벨의 증오로 변해 버렸던 것이다. (···)예리고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였고, 나는 니체였으며, 우리는 한 성직자의 도움을 받아 스피노자의 지성에 도달했고, 하느님의 의지를 인간의 필연으로 변화시켰다. 우리는 결국 의지의 이름으로 필연에 충실했던가? 내 형제와 내가 형제로서 서로 사랑하는 동안 최종 목표로 삼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단 말인가? 우리의 그 어처구니없는 우연의 일치가 바로 그것, 필연과 의지를 하나로 묶는 것이었단 말인가?
* 카인과 아벨. 나는 내 형제 미겔의 시선에서 그 점을 아주 분명하게, 눈이 부실 정도로 명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벨이 아니었다. 우리는 저주로부터도 행운으로부터도 우리 자신을 능숙하게 구해 낸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얼떨결에 형제를 돌봐야 하는 책임을 떠맡은 것이다. 예리고는 우리 형제가 아니었단 말인가? (···)예리고가, 반란에 실패하고 사로잡힌 짐승이, 침을 질질 흘리며 나를 위협했다. 죽여 버리고 말겠어. 이 개새끼야!
* 나는 예리고가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다. (···)'안전하게 있다.' 라던 예리고가 매 순간 나의 영혼을 찾아왔다. (···)우리는 단지 숙명에 이끌려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우리의 특별한 운명에 반항했던가?
* 그는 숙명에 꼭두각시가 되기를 거부했다. 우리는 진이 빠진 채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선택한 운명에 도달했다. 그러나 최종 목적지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모든 운명이 숙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운명은 우리 손에서 빠져나가고, 철문이 닫히듯 삶의 문이 닫히고 만다.
*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우리는 깨달을 수 있을까? 우리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운명을 점칠 수 없다는 사실을.
* 우리는 우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면서도 나름대로 각자의 인생을 선택했다. 우리는 우리가 형제라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카스토르와 폴룩스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카인과 아벨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어렸을 때 서로를 상대로 싸우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강요하는 듯싶었던 필연에 맞서 싸웠다. 우리가 어떻게 질 수 있단 말인가?
*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 한 한무리가 땀을 흘리며 어수선하게 나타났다. 모두들 커다란 낫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루발카바가 직접 내 목을 향해 낫을 휘둘렀고, 내 머리는 피를 흘리며 물이 말라 버린 수영장 바닥으로, 빈 병들 사이로, 갈라진 시멘트 사이에 무질서하게 자라난 잡초 사이로 굴러떨어졌다.
* 내 잘린 머리가 여기 있다. 멕시코 게레로 주 연안, 태평양 바닷가에 야자열매처럼 버려져 있다. 내 머리는 내 몸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내 목 아랫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머리가 없는 내 몸 역시 '안전하게'있을 것이다.
<< 예리고의 말 >> - 신화 속 '카스토르와 폴룩스' 형제처럼 각별한 여호수아의 친구입니다. 법대로 진학한 여호수아와 달리, 유학을 가게 되고 대통령 보좌관이 되지만, 반란을 도모합니다.
* "네 운명에서 벗어나지 마, 넌 알 필요가 없어, 얘야, 우리가 이미 정해 놓았으니까 굳이 알려고 달려들 필요가 없단 말이야. 침대를 정리하듯 네 미래를 준비해 놓았어. (···)아기야, 너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예리고가 험상궂은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잠에서 깨란 말이야, 여호수아. 일어나, 자, 어서!"
* 이 나라는 진보하지 않았어. 왜? 대통령은 소심한 인간이야. 강력하게 지배하지 않아. 우리는 모든 것을 어중간하게 처리하고 있어. 너와 나는? 그렇지 않아. 우리를 지배하는 자들, 모두 어중간하고, 모두 평범해.
* 여호수아, 올해 나는 이 나라를 구석구석 돌아다녔어. 대통령이 축제를 열기 위해 내게 모임을 조직하라고 명령했어. 나는 대통령을 배반했어, 여호수아. 나는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반란군을 조직했어. (···)사람들을 한눈팔게 하기 위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그들의 눈을 막기 위한 축제를 준비하면서 말이야. (···)축제를 이용한 사기극, 그게 바로 대통령이 원하는 거야.
* 미사여구와 현실을 구분해야 해. 나는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중을 선동해야 해. (···)너는 용기가 없어서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나와 함께 걸어가지 않았어. 너는 나와 함께 국경을 넘어가지 않았어. 여호수아, 너는 용기가 없어서 네 안에 있는 악을 조사해 보지 못했어. 우리 두 사람은 항상 알았어.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다면 악도 행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 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착한'사람으로 남아 있는 한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어. 우리가 살아가면서 취하는 모든 행동은 심연의 가장자리로 가는 것과 같아. 어떤 절벽은 선이야. 다른 절벽은 악이야. 혼동하지 마, 형제. 너와 나는 선으로도 악으로도 빠지지 않았어. 우리는 단지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애매모호한 길을 따라 걸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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