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택은 최선이었다
중학생 때, 뜻밖의 기회로 친구와 홍콩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내 생에 첫 해외여행이었고 부모님 없이 떠나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어떤 곳에 가서, 무엇을 구경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잘, 자주, 메뉴 선택에 실패했다.
내가 고른 것보다 친구가 시킨 음식이 더 맛있었고, 열심히 메뉴판을 읽어 서툰 영어로 주문한 커피는 너무 쓰기만 했다. 왜 나는 자꾸 선택에 실패하는지 속상해하고는 친구에게 '네가 고르는 거 따라 할래'하며 웃어넘기려고 했다.
메뉴를 고르는 것을 힘들어하던 내가, 더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어른이 된지도 꽤 오래되었다. 이제는 누군가의 선택을 마냥 따라 할 수도 없을뿐더러 무엇이 좋은 선택인가 가늠하는 것조차 어렵다.
우리는 매일 사소한 그리고 무거운 선택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나는 생각보다 자주 이런 것들이 버겁다.
나에게만 삶이 버거운 것은 아니겠지 생각하며 잘 참아내다가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숨 막히는 하루를 지내다가도, 또 너무 재밌는 일상에 빠져 행복해하다가도, 다시 돌아와서 버거워한다. 버겁다는 표현조차 버겁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얼마 전 엄마와 포기와 후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가,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모든 순간에 내리는 우리의 선택들은 그 순간의 최선이었다.
돌이켜보니 엄마 말대로 그 모든 게 최선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최고의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나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내일도 내가 포기한 무언가에 대한 잔상이 아른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한 그것도, 나의 최선일 것이다.
오늘 내가 포기한 것이 언젠간 다른 의미의 선택으로 나에게 돌아올 수도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