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님이 아버님을 닮아 참 잘생기셨네요.” 친절한 안내원의 따스한 말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잠시, 운서의 짜증 섞인 대답이 순간 정적을 불러일으켰다. “아빠 아니야. 아빠 아니라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어느 가을의 언저리, 오후였다.
나에게는 28살 차이가 나는 아들뻘의 어린 동생이 있다. 동생이 어릴 때는 “형아”라고 부르며 곧잘 따랐는데 머리가 커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데면데면한 것이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졌다. 동생의 입장에서는 같이 살지도 않는, 나이 차이가 확연한 늙은 형이 부담스러웠을 것이었다. 그래서 관계를 회복하고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문화축제에 참여하러 나섰다. 같이 여러 활동을 체험하고 좋은 기억을 같이 만들면서 예전처럼 사이좋은 형제가 되고 싶었다.
출발할 때까지 동생의 기분은 좋았다. 오래간만에 하는 외출, 적당히 선선한 가을날씨가 동생의 굳어있던 마음을 간지럽힌 듯했다. 그런데 막상 행사장에 도착하고부터는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형의 손을 잡은 자기 손을 연신 숨기기 바빴다. 무엇보다 각 부스에 도착해 체험을 앞두고 있을 때 안내원들의 인사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가 봐도 아빠와 아들사이, 그들이 건네는 자연스러운 인사에 운서의 얼굴은 단풍잎처럼 붉어졌다.
“아빠랑 아들이 사이가 참 좋네요.” “아빠를 똑 닮았네요.” “아드님이 이렇게 의젓해서 아버님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나는 그런 인사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고 그저 미소로 화답했다. 굳이 처음 보는 사람, 오늘 보고 아니 볼 사람들에게 복잡한 가정사를 설명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생은 아니었나 보다. 참다 참다 폭발한 것이다. “아빠 아니라고!” 고함과 함께 터진 울음에 꺽꺽대는 동생을 데리고 부스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동생이 진정되기까지 기다렸다가 왜 화가 났는지 물었다.
“형은 내가 부끄러워? 왜 아빠가 아닌데 형이라고 사람들한테 설명을 안 하는 거야?”
“운서야. 그건 설명하기 귀찮아서지, 운서가 부끄러워서가 아니야.”
“나는 사랑하는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어. 형은 형이야. 왜 형을 형이라고 못 불러? 형은 귀찮은 게 아니야. 운서의 형이란 게 당당하지 못한 거야!”
운서의 이야기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나는 귀찮다는 핑계로 내가 사랑하는 동생 운서를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현대판 홍길동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운서를 꼭 껴안으며 약속했다. 앞으로는 그 누구 앞에서라도 당당하게 내 동생이라고 말하겠노라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붕어빵이 먹고 싶다는 동생의 요청에 집 앞 붕어빵 가게에 들렀다. 붕어빵 아주머니께서는 부자지간이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운서를 바라보며 아들이 아니라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동생이라고 대답했다. 아주머니께서는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형제가 붕어빵처럼 똑 닮았다고 호응해 주었다. 운서는 아주머니와 나의 대화에 만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형은 구운 지 오래된 붕어빵이고, 나는 이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붕어빵이야! 그래도 같은 붕어빵기계에서 나왔으니까 우린 같은 붕어빵 형제야”
같은 부모 밑에 조금 긴 시간차이를 두고 태어난 운서와 나. 우리 형제의 우애가 따뜻한 붕어빵처럼 오래오래 따스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