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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무요 Aug 07. 2022

16. 넷플릭스는 패션을 지배할까?

추천 알고리즘은 패션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넷플릭스의 추천, 스포티파이의 믹스, 유튜브의 피드...


알고리즘이 패션처럼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는 점은 여실하다. 당장 주위만 둘러봐도 이 기술은 우리를 지배하는 하나의 시대정신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다. 인류의 삶이 알고리즘 기반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결정되어가는 시대에 패션이라고 이 현실에서 비켜갈 수 있을 리 만무하다.


1.

패션과 알고리즘에 대한 단적인 예로는 미국의 스티치 픽스가 있다. 스타일리스트들을 고용해서 원격으로 고객들에게 스타일링을 제안하던 이 회사는 2012년 넷플릭스의 데이터 공학 부문 임원 Eric Colson을 영입했고, 그는 2021년까지 사내 알고리즘 부문을 총괄했다. 이제 이 회사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스티치 픽스 Stitch Fix: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고객이 작성한 스타일 프로필에 맞추어 가장 적합한 상품을 시기별로 추천하는 기업. 이 한 줄 설명은 단어만 적절히 바꾼다면 넷플릭스에 대입해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고객이 설정한 영화 취향에 따라 가장 적합한 영화 그룹을 장르별로 추천하는 기업.)


https://www.wsj.com/articles/is-stitch-fix-the-netflix-of-fashion-1528408770?reflink=desktopwebshare_permalink 


그래서 정작 고객 맞춤형 옷이란 무엇인가. 스티치 픽스의 '제안'을 살펴보면 고객 맞춤이란 결국 수집한 소비자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스타일링으로 보인다. 이들은 고객의 취향, 체형, 현재 트렌드를 따져 적합한 옷을 추천한다. 아마존과 쉬인은 나아가 AI를 기반으로 대량의 이미지를 분석, 말 그대로 즉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시스템마저 구축한다. 트렌드의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서 나란히 달리는 형국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소비의 자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소비자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과거 기록을 제공할 뿐, 구매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이 개입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기업들은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문 자체를 제안, 유도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구매조차도 자동적으로 행해지는 생산 단계 중 하나이다.


2.

이러한 관점이 비약이 아닌 현실이 되는 순간이 온다면, 트렌드는 어떻게, 누구에 의해 형성될까. 개인의 스타일이 개인을 떠나는 순간 그곳에는 무엇이 남을까. 지금과 같은 옷과 패션의 즐거움이 여전히 머물러 있을까? 디자인의 발전을 위해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 스타일링의 주체가 공급자에게 넘어간다면 위 요소들의 유입은 지속 가능한가?


알고리즘이 패션업계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이유는 다름 아니라 패션이 특히 알고리즘에 취약한 탓이다. 패션은 모든 사람들이 그 시대의 환상을 모방하고자 하는 욕망을 연료로 돌아가는 산업이기에, 알고리즘에 의한 환상의 획일화는 위험하다. 알고리즘은 이 산업의 창조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 기술 아래에 펑크의 자리는 남아있을까.


어느 순간 모두가 유니폼처럼 획일화된 옷을 입을 상황이 도래할 일은 없고, 앞선 걱정이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것도 아니다. 앞으로도 소비자들은 언제나 전례 없이 선택의 폭이 넓은 패션 시장을 마주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다양성이 진정한 다양성 일지는 다른 문제다. 넷플릭스도 우리에게 지난 영화들에 대해 전례 없는 접근 가능성을 제공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이 모든 영화들에게 접근하고 있는가? 이렇게 많은 영화들을 앞에 두고 우리는 무엇을 볼 지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양성 보존을 위해 모든 종자들과 동물들을 한 곳에 '보관'해두고 정작 지구의 대부분은 인간들끼리 살아가는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진정한 옷의 다양성은 앞으로 박물관에서 마주하거나, 스크린 너머 데이터로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3.

취향은 개인의 맛이자 기호다. 맛의 감각과 기호의 선별은 모두 같은 인간의 판단 능력이다. 인공지능의 뜻이 인간의 지능을 모방한 지능이니 우리의 판단 능력 역시 모방할 수 있겠지만, 과연 우리의 판단이 배제된 우리의 기호는 성립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의미가 있을까?


"Taste classifies, and it classifies the classifier"
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 Pierre Bourdieu (1979)

알고리즘의 판단 아래의 패션에서 Classifier는 누구일까. 앞으로 "classifier"는 정말 인공지능의 분류 모델만 지칭하는 단어일까. 피에르 부르디외는 요리, 옷, 장식과 같은 일상의 장식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포기하고 있는 듯하다. 유행이 유행인 이유는 취향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취향을 모른다면 유행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제에 불과하다. 강제로 유행을 매해 할당받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인공지능은 이들에 대한 학습을 통해 소수의 취향은 점차 묵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수의 취향을 계산할 알고리즘에게 펑크라던지 아방가르드라던지 하는 패션의 급진적인 부분은 불필요한 요소에 불과할 터이다. 하지만 언제나 전선의 앞은 주류, 다수가 차지한 적이 없다. 아방가르드가 주류가 되는 순간 즉시 아방가르드는 역할을 다 하고 시대의 뒤로 물러남이 옳기 때문이다. 패션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돌이켜 보면 '소수'의 소멸은 곧 재앙이다.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해 줄 것만 같다. 누구나 본인의 시대가 르네상스의 시작이길 바라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르네상스보다는 암흑시대가 훨씬 길었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 우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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