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물수제비 1탄: 1화 '우리 엄마에게 바칩니다'
나는 자녀가 없는 싱글여성이다. 덕분에(?) 온갖 야근과 회식, 장기해외출장 등에 있어 심적인 자유를 가지고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고, 퇴근 후에도 워라밸이 가능했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워킹맘인 회사 동료들이나 주변 친구들을 보면 나는 나의 어머니가 항상 오버랩되어 어머니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에 목이 메이곤 한다.
나의 어머니는 ‘엄마' 와 ‘아내’, ‘여성의 사회진출'의 역할 모두를 요구 받으며
출산과 육아, 살림, 회사 생활,
그리고 박사 공부까지
이 모든 것을 매일 전쟁처럼 치러내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던 그 해, 어머니는 서른살의 나이로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학교에 가야 했던 어머니는 8살과 5살된 자식들의 점심과 저녁 도시락 총 4개를 항상 싸두고 나가셨는데, 매일 매일 점심과 저녁 반찬 하나 겹치는 일이 없었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지만, 그 당시엔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도시락 까먹는 재미'에만 푹 빠졌었다. 아마도 한창 엄마의 손을 탈 때인 두 자식들을 집에 두고 나가야 하는 어머니의 미안함에 따른 최소한의 표현이었으리라.
그렇게 학교 공부를 끝내고 집에 온 어머니는 집안 살림을 돌보고 새벽까지 공부를 하시고는 했다. 어느 날 목이 말라 잠이 깬 새벽, 어둠 속에서 책상 스탠드 불 하나만 켜두고 책을 파던 엄마의 뒷모습은 어린 나에게도 뭔지 모르게 대단히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날 어둠 속에서 빛이 나던 것은 어쩌면 울엄마 그 자체였으리라.
서른이라는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어머니는 졸업 후에 바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셨지만 마치 그간 배움에 목이 말라왔던 사람처럼 공부를 지속하셨다. 석사 공부에 박사까지, 그렇게 3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대학 교수로서 강단에 서계신다. 나는 내몸 하나 건사하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엄마', '아내', '학생', '직장인'이라는 모든 역할을 오롯이 잘 해내셨을까! 그 과정 속에서 어머니가 느끼셨을 고단함, 어떤 위로나 이해 받지 못함에서 오는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집안일을 거들기는 커녕 짜증이나 내던 그 시절 철없던 내가 야속하기만 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모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그러나 저녁상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설거지까지 다 마친 후에 밤이 되어서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아버지와 자식들은 그저 어머니가 깎아준 과일을 먹으며 한가로이 티비를 보고 있었을테다. 어머니가 얼마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을 하셨을지는 생각하지도 못한채 말이다. 싱크대에 홀로 서서 설거지를 하던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어머니는 그런 상황에서 과연 행복하셨을까?
내가 20대 초반이었던가, 어느 날 어머니는 결국 폭발을 하고야 말았다.
당신이나 나나 똑같이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왔는데 왜 집안일도 다 내가 해야해?
당신의 연봉이 더 높다는 것이 당신에게
집안 살림 면책권을 주는 것은 아니야!
앞으로 당신이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해!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이제 다 컸으면
각자의 몫을 해!!!
'엄마'의 역할이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진데, 그 당시 '엄마니까'는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프리패스였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당신에게도 심리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화가 나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이를 악 물고 버텨내고 있었으리라.
우리 부모 세대가 겪어온 이 역할 분담의 문제는 작금의 나의 세대에도 여전히 갈등이 지속되는 중이다. 양 세대 간에 30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음에도 과연 우리 세대가 고정된 성 역할의 개념으로부터 진화하였을까? 안타깝지만 나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 세대가 고민해야 하는 사회문화의 발전 방향성에 대한 논의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온라인에서는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로 양분되어 서로의 감정에 상처만을 주며 증오와 분노로 치닫고 있음에 답답함을 느낀다.
'여성'과 '남성'의 입장에서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퇴근 후에 내 몸이 피곤하면 내 아내도 피곤하겠지? 내가 귀찮으면 남편도 귀찮겠지? 내가 함께 하면 서로 조금씩 피곤함을 덜 수 있겠지?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다면 말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서 서로가 공감을 통해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게 되면 그게 좋은 시발점이 되지는 않을까.
힘들게 살아온 지난 60년 세월의 관성에 여전히 쉴 줄을 모르는 울 엄마!
엄마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삶에 대한 가치관이 지금의 내가 되는데에 큰 뼈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항상 나의 베스트 프렌드였던 울 엄마, 훌륭한 어른으로서의 본보기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이 딸래미가 든든한 힘이 되어줄테니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 주시길 바라며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