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한 몇 가지 단상
매일 글을 쓰기로 결심한 후 나의 생활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일상 속 모든 것들이 글의 재료로 보인다는 점이고(축복인가?), 둘째는 그 재료를 어떻게 '요리'하여 글다운 글로 완성시킬 것인가 늘 고민을 한다는 점이다.
글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어제 볼 땐 분명 마른 가지였는데 오늘 가보니 꽃을 화사하게 피어 낸 벚꽃나무, 남편과 지난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떠오른 아쉬움 같은 생각의 편린, 책을 읽다가 밑줄 그은 부분, 운영하는 온라인 필사 모임 단톡방에 올라온 글 중 유난히 눈에 띄는 단상 등, 이 모든 생각의 조각조각들이 글의 훌륭한 재료가 된다.
문제는, 떠오른 생각들을 노트에 그냥 적어놓기만 한다면(물론 그것 또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것은 재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재료는 잔뜩 갖다 놓았는데 손질할 생각도, 요리할 생각도 없이 냉장고 속에 몇 날 며칠 처박아 두기만 한다면 재료의 운명은 딱 거기까지다. 재료 스스로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의미를 다하기 위해선 결국 누군가에 의해 요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잘' 요리되어야 한다!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요리하는 사람마다 각자의 특색 있는 요리를 만들어 낸다. 설령 같은 요리를 만들어 냈다 해도 그 맛까지 똑같을 리 없다. 물의 양과 재료의 썰기 모양, 조미료나 향신료의 사용 여부, 끓이거나 데치는 시간 등 다양한 변수가 적용되어 결국 세상에 하나뿐인 요리를 만들어낸다.
글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같은 글감, 같은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어떻게 글을 전개해 나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글이 된다. 같은 경험을 했어도 그 속에서 뽑아내는 각자의 '의미'가 다를 것이다. 이들을 연결 혹은 조합하여 최종적으로 이끌어낼 글의 주제 역시 작가의 가치관, 사유 방식, 글 쓰는 실력(혹은 역량)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 다른 방향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 '결과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글쓰기를 망설이게 하는 장본인일 수 있겠다. 글의 소재는 폴더 안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는데 막상 흰색 화면을 앞에 두고서는 '자, 이젠 어떻게 써야 하지?' 하며 괴로워했던 적이 참 많다. 그럼에도 쓰지 않으면 이 소재들은 결국 냉장고 속 오래된 식료품으로 남게 된다. 버려지는 소재를 아까워하는 대신, 조금은 서툴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다듬어 보고 건강한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용기를 내면 어떨까?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요리들이 쌓여갈수록, 나의 실력 역시 느리지만 천천히 발전할 것이다. 그 믿음이 오늘도 글감을 모으고 서툰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