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누군가의 수국이었을까?
지인으로부터 꽃 선물을 받았다. 첫 책 출간 이후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는데, 꽃 선물은 처음이다.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수국 세 송이었다. 재작년 남해 여행 중 어느 유적지에서 꽤 많은 양의 수국을 만났는데, 그 소담하고도 우아한 자태에 흠뻑 빠져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두 손으로 둥글게 받쳐 들고, 향기도 맡아보며, 요리조리 살펴보면서 사진을 찍느라 족히 한 시간은 그곳에 머물렀다. 그 꽃이 지금 우리 집에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왠지 불안 불안하다.
수국은 반음지 식물이다. 평소 햇빛을 잘 쐬어주어야 하는 다른 꽃들과는 달리, 수국은 음지의 서늘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놓아야 한다. 물 관리도 중요하다. 수국은 물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이틀에 한 번은 (찬) 물을 갈아줘야 하며, 잎이 시들면 아예 꽃 전체가 물에 잠기도록 목욕재계를 시켜줘야 한다. 식물 하나를 제대로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매일 아침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꽃의 상태를 확인한다. 왜 이렇게 시들었을까? 어제 줄기도 잘 잘라주었는데 왜 이렇게 힘이 없지? 물이 탁한가? 시들하게 고개 숙인 꽃을 바라보며 괜스레 미안해진다. 초보 중에서도 생초보를 만나 이렇게 고생하는구나, 싶다.
햇빛은 싫어하고 물을 좋아하는 꽃이라니. 지인이 수국 관리법 영상 링크를 보내주셨을 때, 처음엔 사실 '이 영상을 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식물'이란 개념 속에 포함되는 모든 것들은 다 저마다의 생존 방식이 있을 텐데, 나는 그저 내가 대충 알고 있던 지식으로 '퉁 쳤던' 것이다. 하루 동안 필요한 물의 양, 햇빛의 세기, 바람의 강도, 토양의 상태, 온도의 높낮이 모두 다 다르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내 방식대로 생각했다. 그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수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난 아마 하루 이틀 사이에 시들시들해진 꽃을 무심하게 들고는 '아쉽지만 꽃은 원래 시드니까'하며 그대로 보내주었을 것이다. 무섭도록 무지한, 그야말로 무책임한 이별이다.
무책임한 이별이 단지 식물과의 사이에서만 존재했던 걸까. 누구든 다 자신만의 자라는 방식, 그만의 '관리법'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나머지, 상처를 주고 떠나보낸 이들이 나에겐 없었을까? '잘 살기' 위해서는 항상 강한 햇빛과 적당한 바람을 쐬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서, 나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주입하고 결국엔 시들해져 버려 쿨하게 떠나보낸 나의 수많은 수국들을 떠올려본다. 나 또한 누군가의 수국이 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의 평가와 시선, 기준과 삶의 방식을 마치 내 것인 양 꾹꾹 욱여넣고는 하루하루 채워지지 않는 갈증으로 말라갔던 나 또한 이유모를 이별의 피해자였다.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는 수국을 살리기 위해 난생처음 수국 관련 블로그와 영상을 찾아보았다. 언 손을 비벼가며 얼음을 부셔서 화병 속에 채워 넣고, 매일매일 물을 갈아 주었다. 햇빛을 피해 집 안에서 가장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놓아두었다. 수국 한 송이 살리는데도 정성이 필요한데, 사람은 오죽할까. 그 사람의 삶을 제대로 보아주고, 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내 방식이 아닌 그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과정에서 우리는 함께, 오래갈 수 있다. 무책임한 이별을 행한 자도 당한 자도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를 고유한 존재로 대하고 그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볼 줄 아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그 섬세함에 정성과 애정이 깃들었을 때, 서로는 서로에게 진정한 꽃이 되고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