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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원 Apr 10. 2022

마지막 산행

일기장 속 등산 기록을 살펴보았다. 지난달 8일에 첫 기록이 있으니, 한 달 남짓 매일(비가 오거나 외부 일정 때문에 못 간 서너 날은 봐주기로 하자!) 산을 오른 셈이다. 사실 그 전에도 종종 다녔던 집 근처 작은 산인데, 워낙 운동을 싫어하는 나는 등산보다 힘이 덜 들어가는 하천길 걷기를 선호했다. 한 달간 매일같이 산을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 덕분이다. 산이 주는 느낌, 그 평온함과 즐거움 때문에 매일 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 역시 매일 오르다 보니 하루라도 가지 않으면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습관의 힘일까 아니면 산의 힘일까. 어쩌면 그 둘 다일 수도 있겠다.


비상이다. 산에 '근린공원'을 만든단다. 늦은 오후 여느 때처럼 남편과 산으로 향하니 모레부터 산 출입을 금한다는 플랜카드가 산 초입부터 정상, 팔각정, 산 중턱 곳곳에 친절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에 60층 고층 빌딩을 올리고 주민 편의시설을 세운다고 한다. 공사 기간은 2년이며 이는 '예정'이라는 여지도 빼놓지 않았다. 오늘따라 산을 오르는 내내 숨이 턱턱 막혔다.

동네에 산이 있다는 것, 발 닿는 곳에 숲이 있고 새가 울며 산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이 축복처럼 느껴지는 시대다. 숲이 하나하나씩 없어지고 그 자리에 회색빛 매끈한 건물이 끊임없이 올라서는 모습을 보며,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은 산속 새들일까 빌딩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하는 이상한 상념에 빠져든다. 돈으로 뭐든지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목격한다. 돈으로 일구고 뒤엎고 파헤치며 매끈한 건물을 척척 세울 수 는 있겠지만, 그 땅 위에 다시 숲을 이루고 새의 울음소리를 되찾으며 숲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받았던 이들의 마음을 담는 건 수년, 아니 더 요원한 세월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날을 생각해 보려 해도 까마득하니, 어쩐지 서글프다.


​내일 새벽, 마지막 산행을 떠난다. 왕복으로 고작 한 시간도 안 되는 산행이지만, 발걸음 내딛을 때마다 샘솟는 서운함과 미안함, 부끄러움을 오랫동안 느끼며 되도록이면 천천히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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