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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cellaneous Sep 17. 2022

죄악의 도시를 거닐었다, 한밤중에

라스베가스의 밤거리를 누볐던 이야기

앞서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라스베가스로 이동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스베가스로 이동할 때에는 알래스카 항공을 이용했다. 1시간 정도 날았을까? 창밖을 보니 웬 갈색 땅밖에 안보였다. 비행기는 슬슬 랜딩 준비를 하는 것 같은데, 대체 어디에 내리겠다는 건지, 라스베가스는 어디 있다는 건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사막을 지나서 이제야 좀 '도시 같은 것' 들이 보였을 때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가 라스베가스 국제공항인 Harry reid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맞닥뜨린 건 EGM(Electronic Game Machine)이라고 불리는 도박 게임기였다. 어딜 가나 성역이라고 불리는 게 공항인데, 그런 공항의 탑승구까지도 게임머신이 설치되어 있다니;; 내가 정녕 베가스에 왔다는 게 벌써부터 실감 났다.



아이폰 날씨 앱에 빨간색이 보이는 건 처음 봤다.

라스베가스의 첫인상은 "미친 듯이 덥고 건조하다"였다. 나는 핸드폰에서 외부 기온을 보자마자 옷부터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최고기온 43도에 최저기온 32도라니, 최저기온이 내가 살던 인디애나 최고기온에 맞먹는 이곳은 도대체.... 샌프란시스코에서 최고기온이 20도 남짓이 던 걸 경험하다가 비행기 1시간 30분 정도 탔을 뿐인데 +20도가 되어버리는 미국 기후의 버라이어티에 감탄할 수밖에.


호텔로 가는 우버를 타러 공항 문을 여는 순간 느꼈던 나의 소감은, "마치 오븐에 넣어둔 소중한 냉동피자가 잘 익었나 보려고 얼굴을 들이밀고 조심스레 열어 보았을 때의 느낌과 같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공항 건물의 그늘 아래서 우버를 기다리는 동안 일행들에게도 소감을 물어보았다.


워낙 더운 텍사스에 살다 온 I는 "당장은 햇빛이 없어서 좋다",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에 살다온 J는 "한국 찜질방에 온 것 같다", 이웃동네 일리노이에 사는 H는 "아직까진 괜찮지만, 해가 뜨면 피부가 따가워질 것 같다"라는 유언들을 남겼다.



라스베가스의 한낮은 정말로 덥고 덥고 덥고 더웠다(그만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함). 게다가 끔찍하게도 건조해서, 눈이 금방 빨개지고, 코도 금방 말라붙었다. 그래서인지 밖에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을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다들 차로 다니거나, 아니면 호텔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첫날을 보내게 된 호텔은 라스베가스에서 현존하는 카지노 호텔 중 가장 오래된 Flamingo hotel(플라밍고 호텔)였다.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왜 그토록 밖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에어컨은 풀가동, 내부에는 쇼핑몰부터 카지노까지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게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굳이 더운 외부에 나가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라스베가스 호텔 안에 수도 없이 많은 EGM, 돈을 먹고사는 기계다
카지노 존에는 체크인이 막 시작될 무렵이라 한산한 편이었다.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돈을 넣고 와서 버튼만 누르면 결과가 나온다. 모든 건 운이다.
객실에서 내려다본 호텔 앞마당의 전경, 빼곡히 심어진 야자수 나무 아래 수영장이 보인다.


체크인을 하고 나서 잠시 쉬다가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간다 싶을 때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저녁은 다 같이 간단하게 가성비가 좋은 피자로 때웠다. 라스베가스에서 웬만한 건 다 구글 지도에서 $ 표시가 2개 이상이었고, 비싼 만큼 맛있을 것 같다기 보단, 그저 관광도시라서 많이 뻥튀기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마다 카지노는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


저녁을 먹었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40도에 육박하는 기온이 시시각각 몸의 수분을 빼앗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정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글이글 타는 거리 위에서 하나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캔맥주를 들고 다니며 마신다는 것이었다.


길거리에서 캔맥주 한잔이 불법이라고?

한국에서만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길거리에서 맥주 마시는 게 눈치는 보일지 몰라도 그게 왜 법적으로 문제가 되냐고 할 수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야외에서 극 소수의 지정된 구역(음식점 바로 앞 테라스 정도?)을 제외하고는 술을 마셔서도 안되고 술병이 겉으로 노출되게 들고 다녀서도 안되기에, 라스베가스에서 보는 이 광경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다.(찾아보니 인디애나 주에서는 외부에 노출되게 들고 다니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한다)


"그냥 놀자판이라서 경찰마저도 안 건드리는 게 상도덕이라는 암묵적인 룰이라도 있나"

"나도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는 건가?"


등등의 다양한 추측을 해보다가, 전지전능하신 구글에게 물어보니 돌아온 답변은 바로 이곳만의 특별한 'Open container law'였다. 라스 베가스에는 호텔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Strip(스트립)이라고 불리는 대로가 있는데, 이 대로에 한해서 유리잔에 담겨있지만 않다면 주류를 포함한 모든 음료수를 야외에서 마실수 있다. 희한하게도 술이 아닐지라도 유리잔을 들고 길거리에 설치는 건 안된다고 한다.


이러한 특별한 법 때문인지, 스트립에 위치한 멕시칸 패스트푸드 체인점 타코벨에서는 슬러쉬에다가 양주를 샷으로 추가한 메뉴를 판매하기도 했다. 나는 마가리타에 테킬라 샷을 2번 추가한 음료를 홀짝거리며 마치 천국에 온듯한 기분으로 스트립 이곳저곳을 거닐기 시작했다. 

스트립에 위치한 타코벨 Cantina에서는 여러가지 맛의 슬러쉬에 양주 샷을 추가해준다. 게다가 맥주도 팔고 있다.


술이 다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CVS나 Walgreens, Target에 들어가서 냉장고에 있는 3~4달러짜리 맥주 한 캔을 산 다음 매장 문을 나서면서 한 모금을 마시면 된다. 곳곳에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관광객의 충동적인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안달이 나있는 이 사치와 향락의 도시는 맨 정신으로 다니는 게 되려 죄악으로 느껴질 만큼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취기에 의존하여 충동구매를 할뻔한 것도 많았지만, 충동심이 강해지고 용기가 커졌다 해서 지갑도 두둑 해지는 건 아니었기에 효과는 미미했다.


본인으로 의심되는 취객 한 명이 MGM호텔 앞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라스베가스 곳곳에는 다른 도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매우 많다. Coca-cola, M&M, Hershey's를 마트 진열대에서 상품으로만 접했지, 별도의 매장을 본 적은 없지 않은가? 강남에 있는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를 생각해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와닿을 것이다. 매장에 들어가 보면, 정말 인터넷에서나 볼법한 온갖 굿즈들을 판매하고 있다. '얘네가 이런 것도 만들 줄 알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코카콜라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본 다양한 굿즈들, 그중에 한글 라벨이 붙은 셔츠가 인상적이었다. 세종대왕 만세
M&M 플래그십 스토어이다. 온갖 색깔의 M&M 초콜릿들을 골라담을 수 있다.
이렇게나 브랜드 홍보에 진심일 수 있다는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근데 저 차는 갖고싶지 않다.
Hershey's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초콜릿으로 만든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한편 Hershey's 초콜릿으로 만든 브라우니도 있다.
Hershey's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스모어를 직접 만들어 판다. 그리고 저 초콜릿 향 양초는 정말 탐나는 녀석이었다.


브랜드마다 개성을 잘 살려서 매력적인 굿즈를 팔고 있었다. 솔직히 돈만 넉넉하면 다 쓸어 담고 싶은 것들이었다(어쩌면 취기 때문일지도...). 특히 KissesReese's 초콜릿의 향이 나는 양초는 정말 살까 말까 고민을 꽤나 했었다. 향이 너무나도 달달하고 리얼한 나머지 향만 맡아도 살찔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한편 H는 스모어를 하나 집어 들고서 음미했고, 나머지 일행들은 그 모습에 감탄하며 친절하게도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남겨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이 어두워지고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해가 졌다고 해서 기온이 내려간 건 아니었다. 덥고 건조한 건 여전했다. 어두워짐에 따라서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더운 한낮에는 다들 카지노에서 놀다가 밤이 되면 라스베가스의 밤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라스베가스의 야경, 사진으로 차마 담지 못하는 것은 동영상이라도 찍어놔야 한다.
고든 램지의 헬스 키친 레스토랑도 여기 있었다. 가격도 물론 이름값을 한다.


일행들 일부는 쇼핑한다고 여기저기 들어가 있었지만, 나는 쇼핑보다는 이 화려한 길거리 한복판에서 야경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게 더 즐거웠다. 한 캔에 750ml나 하는 Modelo를 들이켜면서 핸드폰과 카메라에 그리고 내 머릿속에 라스베가스를 남겼다.




밤거리를 둘러보면서 우리는 분수쇼 2개를 보러 가기로 했다. 첫 번째 분수쇼는 Hotel Bellagio(벨라지오 호텔)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이 호텔 앞에는 거대한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에서 음악에 맞춰 분수쇼를 한다. 

벨라지오 호텔의 야경이다. 분수쇼가 한번 끝나고 쉬는 시간이다.
음악에 맞춰서 분수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EQ 시각효과를 보는 듯하다.


분수쇼가 끝나자 사람들이 다 같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기술의 발전 덕분인지, 여태껏 봐왔던 어떤 음악분수보다도 노래와 분수의 싱크가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분수 근처에 사람이 몰리는 걸 알고, 그 틈새시장을 이용해서 맥주를 파는 사람도 있었고, 노골적인 옷을 입고 다가와서 같이 사진 찍혀줄 테니 돈을 주라고 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특히 이 여성들은 엉겁결에 눈만 마주쳐도 와서 말을 걸며 호객행위를 하면서 귀찮게 하기 때문에 그냥 빠르게 지나치는 게 좋다. 


다음 분수쇼는 The mirage hotel 쪽에 자리 잡은 The volcano라는 이름의 분수에서 볼 수 있었다. 이름 그대로 화산을 연상시키는 분수쇼가 긴장감을 일으키는 배경음악에 맞춰서 리드미컬하게 뿜어져 나오는 분수쇼다.

The volcano의 분수쇼, 가끔 저 불꽃 기둥이 너무 강력해서 얼굴까지 온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분'수'쇼랬는데, 사실상 물 절반 불 절반인 느낌이다. 아무튼, 화염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한 분수쇼는 처음이었고, 정말 새로웠다. 배경음악까지 화산이 곧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것 같은 긴장감을 이끌어내어 길을 지나가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목을 집중시키고 몰입감을 증강시키는 효과를 주었다. 내 생각엔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보다는 이게 더 매력적이었고 뇌리에 깊게 남겨졌다.  




해질 때쯤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라스베가스를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우리의 본거지인 플라밍고 호텔로 돌아왔다. 꽤나 열심히 걸어 다닌 데다가, 갈증이 날 때마다 길거리에서 맥주를 연거푸 마셔댄 덕에 샤워하고 얼마 있지 않아 곧장 잠에 들 수 있었다.

우리가 투숙한 플라밍고 호텔의 야경, 호텔 자체가 한 마리의 거대한 플라밍고가 되어버렸다.


한여름 라스베가스의 밤거리를 둘러보며 느낀 점과 기억에 남는 것들이라면, 

 

1. 돈이 정말 많다면 다른 어느 곳보다도 돈 쓰는 재미가 가장 쏠쏠할 것이다.

2. 모두가 놀자판이다 보니 그 누구도 뉴욕처럼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3. 브랜드 스토어를 이곳에 갖다 놓는 것만으로도 상징성이 있고 충분한 광고가 된다.

4. 시대가 많이 지났음에도 네온사인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인지 여전히 남아있다.

5. 정말 정말 정말 덥다

6. 워낙 주변에 사람이 많고 여기저기 반짝거려서 치안을 걱정할 필요는 딱히 없다.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라스베가스 국제공항에 오자마자 본 것중, 'What happens here, only happens here' 라는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던 기억이 난다. 꼭 들어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잭팟이든, 볼거리든, 그밖의 즐거운 경험이든, 이곳 라스베가스가 아니면 찾을 수 없을거라는 그 카피라이트는 관광객을 벌써부터 들뜨게 만들고 지갑을 더 열지 않으면 안될것만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도박과, 술과, 남성중심의 성적인 콘텐츠들이 일상인 듯이 횡행하고 그것이 주된 비즈니스인 라스베가스는 "하지 말라는것만 골라서 하는"Sin city(죄악의 도시) 라는 악명높은 명칭이 매우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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