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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cellaneous Oct 15. 2022

결혼식은 행사가 아닌 파티다

미국에서 결혼식 참석한 이야기

전날 국립공원 여행을 마치고, 이번 여행의 핵심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Denver(덴버) 남쪽의 도시인 Colorado springs(콜로라도 스프링스)로 떠날 채비를 했다. 덴버에서 콜로라도 스프링스 까지는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 그렇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이웃 도시가 되겠다.


이번에 결혼하는 친구는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여자 사람)친구였다. 가족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어릴 적 많이 어울렸던 적이 있어 종종 연락하고 지냈는데, 어느 날 미국인 남자 친구와 미국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내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이라 아름다운 자리를 조금이나마 더 빛내주고, 행복한 앞날을 응원해줄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오후에 있는 결혼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먼저 배고픔부터 해결하러 갔다.

(결혼식 내용이 보고 싶은 사람은 좀 더 아래로 스크롤하기 바란다.)




인 앤 아웃, 그리고 덴버의 Wildlife drive

결혼식은 오후 5시 정도에 시작이었고, 시간이 조금 남아서 덴버 인근을 좀 둘러보다 가기로 했다. 먼저 허기진 배부터 채우러 In-N-out(인 앤 아웃)으로 갔다. 미국 중부에서 구경조차 못하는 인 앤 아웃은 여행 가서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In 했다가 Out을 해야 비로소 직성이 풀린다.

가성비로는 이만한 햄버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맥도널드는 논외다.

아점을 먹고도 시간이 조금 애매하게 남아서, 덴버 근처에 있는 Wildlife drive at the rocky mountain arsenal을 들렀다. 따로 입장료도 없고, 주택가 근처에 그냥 공원처럼 조성된 넓은 들판이었다. 차로 들어가서 쓱 둘러보고 나올 수 있는 그런 야생 보존구역 같은 곳이다.

저 멀리 검은색 덩어리가 버팔로다. 사진으로는 너무 볼품없게 담겼다.
사슴 무리가 강한 햇빛을 피해 그늘 아래서 조용히 숨만 쉬고 있다. 세상만사 귀찮아 보인다.

프레리독, 버팔로, 사슴 등등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열심히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지만, 가다가 앞에 차가 서있다 싶으면 그 뒤에 달라붙어서 뭘 보느라 그렇게 차를 세워놨는지 주변을 살피면 하나씩 보인다.


특히 사슴들은 멀리서 봤을 때 웬 나뭇가지들이 나무 밑에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사슴 무리의 뿔이었다. 햇빛이 강할 때라 다들 더위에 지쳐 보였다. 사슴들이 놀라지도 않고 일어나기조차 귀찮은 듯이 바닥에 퍼져있어서 오랫동안 보기에 좋았다.




1시간 30분 정도 운전을 해서 결혼식장 인근의 에어비앤비에 체크인하고, 하객룩으로 갈아입은 뒤에 결혼식이 열리는 Event center로 향했다. 술을 마실걸 생각하고 갈 때는 우버를 불러서 갔다.


입구에서 친구의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이모님과 남동생을 만나 뵈었다. 서로 거의 13년 만에 뵙는 거였는데, 세월의 흔적은 보여도 옛날 그 모습 그대로 건강하게 계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타지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도 반가울 줄은 몰랐다. 타지 생활 1년 만에 처음으로 가슴속 깊이 따뜻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미국의 결혼식은 전형적인 한국의 결혼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축의금 말고 선물로

미국에서는 신랑 신부가 Registry(받고 싶은 선물들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웹페이지에 공유한다. Amazon Wedding Registry라는 이름의 서비스인데, 신랑 신부의 신혼집으로 곧바로 선물을 결제해서 보내줄 수가 있다. 


한국이었으면 가자마자 줄 서서 축의금부터 내고, 부랴부랴 주변에 계신 가족분들과 인사 한마디나 겨우 나눌 수 있었겠지만, 미국은 축의금 대신 선물이나 기프트카드를 미리 보내 놓는다. 실속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문화였고, 특히나 하객 입장에서는 달랑 축의금을 주는 것에 비해서 선물 고르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부여할 수 있어서 만족감이 컸다.

Registry의 선물을 구매하고 나면 이미 결제한 걸로 표시되어 선물이 중복되는 현상을 막을 수도 있다.



신부대기실이 없다

인스타그램으로만 봐왔던 내 친구도 오랜만에 보고 싶었으나, 신기하게도 미국 결혼식 문화에서는 신부대기실이 없다. 결혼식 전까지 신부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는 사람은 신랑뿐, 결혼식 전까지는 하객에게도 비공개라고 한다. 


한국 결혼식에서 신부대기실에 앉아 얼굴 근육에 힘이 풀리도록 웃음을 짓고, 사진을 남기고, 그 와중에도 찾아오는 하객을 반가워하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단 이게 훨씬 좋아 보였다. 신부 입장에서도 어수선한 분위기보다는 이렇게 신랑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신랑 신부 입장 시에 박수를 치지 않는다

어느덧 Ceremony의 시간이 다가왔다. 신랑이 신랑의 부모님과 함께 입장하고, GroomsmanBridesmaid라고 불리는 들러리 4쌍이 따라 입장했다. 신기한 건 모두가 자리에 앉아서 박수도 치지 않고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신부가 신부 측 부모님과 함께 입장했고, 이때 하객들이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들 기립해서 뒤를 돌아 신부 쪽을 쳐다보고 섰다. 물론 박수는 여전히 치지 않고, 마치 예를 표하듯이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 분위기가 엄숙하게 느껴지면서도 한국 결혼식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익숙했던 나에겐 영 낯설었다. 

신부가 입장할 때, 하객들 모두 일제히 기립하여 신부를 향한다. 이때마저도 조용하고 엄숙하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의 고향 친구라는 자격으로 감히 사진을 같이 찍을 영광을 얻었다.


Ceremony가 끝나면 Party가 시작된다 

일반 하객들 대상으로 한국의 결혼식에서 메인은 뭐니 뭐니 해도 Ceremony(본식)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Ceremony는 신랑 신부가 모두 앞에서 영원을 맹세하는 순간이므로 당연히 결혼식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시간 비중을 따져보았을 때 Ceremony는 메인이 아니다. 


Ceremony가 끝나고, 웨딩촬영이 끝나면, 저녁식사 전에 하객들끼리는 Ceremony의 엄숙했던 분위기를 훌훌 털어내고 서로 대화하며 Cocktail hour를 가진다. 말 그대로 간단한 안주와 함께 술을 곁들이는 시간이다. 마치 학회 시작 전에 참석자들과 함께 한잔씩 들고 네트워킹을 하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다.

결혼식 당일 스케줄이다. 5시간 30분 동안 세리머니는 30분, 이후에는 모두 파티의 시간이다.


Cocktail hour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Reception(연회)와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Cocktail hour부터 시작해서 술은 무제한으로 제공되었고, 저녁식사도 정말 맛있었다. 로드트립 다니느라 삼시세끼 햄버거만 먹다가 진수성찬이 차려지니 행복할 따름이었다. 

연회장 한편에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즉석 사진을 찍고 내가 적은 방명록에 사진을 꽂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Reception의 시작은 결혼식 주인공들의 춤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춤이라 함은 멋지고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신랑과 신부가 함께, 그리고 신부와 아버지가 함께, 그리고 신랑과 어머니가 함께 잔잔한 음악에 맞춰 왈츠를 추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나 신부와 신랑이 각각 아버지 어머니와 춤을 출 때,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말을 건네거나, 벅차오르는 시원섭섭함에 말조차 못 꺼내고 눈물만 흘리기도 했다. 나는 부모가 되어보지 않았고,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완벽히 이해되는 심정은 아니었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먹먹해지게 하는 Last dance 였다.


축사와 답사는 연회 중에

이어서 축사와 답사가 이어진다. 축사는 신랑 측 들러리 중 Bestman이라고 불리는 신랑의 절친이 나와서 모두 앞에서 축사를 읽는다. 이어서 Maid of honor라고 불리는 신부의 절친이 나와서 똑같이 축사를 읽는다. 이후에는 신랑과 신부가 함께 나와 답사를 낭독한다. 나의 친구는 신부로서 한국인 하객들을 위하여 신랑의 답사를 하나씩 한국말로 번역해 주었다. 한국처럼 Ceremony 중간에 높으신 분이나 부모님의 축사가 있고 이에 답사가 이어지는 형태가 아니었다. 


결혼식의 마무리는 댄스파티

이런 진지한 분위기도 잠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치자 DJ가 본격적으로 댄스파티를 위한 선곡을 시작했다. EDM곡들과 고전적인 미국의 댄스파티 음악들이 흘러나왔고, 이에 익숙한 미국인들이 너나 할 거 없이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편, 나는 결혼식 가서 춤 출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그리고 살면서 춤을 춰본 적이 없다). 하지만 상상을 했건 말건 정신 차려보니 스테이지에서 '갓 태어난 송아지 마냥' 간신히 리듬을 타고 있었다.

이보다 더 재밌게들 노는 사진이 많았는데, 나도 노느라 못 찍었다.


신기했던 건 어떤 음악이 나오면 이 음악에는 이 춤을 춰야 한다는 게 약속이라도 돼있듯, 미국인 하객들이 마치 플래시몹에 가까운 모습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다들 기본적으로 즐길 줄 아는 그들의 모습이 참 멋있고 부러웠다.




이윽고 댄스파티가 끝이 났고, 결혼식의 끝은 하객 모두가 마주 보고 긴 행렬을 만들어 비눗방울을 불고, 그 사이를 신랑 신부가 통과하면서 성대한 결혼식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샘플 이미지> 이렇게 모두가 입으로 비눗방울을 불며 마지막에 신랑 신부의 인생 샷을 남겨준다.


미국 결혼식에 처음으로 참석한 경험은 정말이지 대만족이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인상깊은 경험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결혼식에 신랑 신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거 참석하고, 하객들끼리 오래간만에 인사하기 바쁘고, 축하보다는 참석에 의의를 두기도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리는 한국의 결혼식만 봐오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문화였다.


제한시간 내에 끝내야 하고, 정해진 것과 계획된 것들만 겨우 하고 끝나는 식이나 행사가 아니라,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하고 즐길 수 있는 파티가 되어, 하객들이 자연스레 둘의 결혼을 즐거운 기억으로 담아둘 수 있게 되는 이 모습이야말로 바람직한 결혼식의 방향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영광스러운 경험을 선사해준 신부이자 내 오랜 친구에게 감사를 표하며 경험담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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