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올챙이가 사라져서 두 시간 넘게 아이를 찾느라 학교랑 집에서 난리를 치르고 난 후라 이번엔 또 무슨 사고가 생겼나 싶어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까지는 미처 제어하지 못했다.
S초등학교 2학년 2반. 올챙이의 담임선생께서는 올챙이 일로 상의드릴 일이 있으니 학교로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해 오셨다.
'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쳤을까?'
면담 전까지 밥 잠을 설치고 드디어 약속 잡은 날, 올챙이의 담임선생과 대면하게 되었다.
"어머님을 뵙자고 한 이유는요. 제가 미국에서 아동심리학을 부수적으로 전공해서 아이들의 심리나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읽히는데... 올챙이의 행동은 전혀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어서요. 며칠 전에는 남자 짝꿍에게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아무래도 심리 전문 상담을 받아보시는 게 좋을 듯해서 뵙자고 했습니다."
"그 마.. 마... 말씀은...."
"제가 봤을 때는 ADHD 같은 행동이 보이는 듯한데 자세한 건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찾아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정말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내 아이가 ADHD라고?
우리 올챙이가 조끔은 덜렁대고 까불기 좋아하고 조금 과한 행동과 쎄 보이는 말투를 구사하기는 했지만 수업시간에 막 돌아다니며 수위를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단 한 번도 ADHD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챙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다섯 살 때 혼자서 글을 깨쳐서 내가 혹시 영재를 낳은 거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도 했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언어 구사력과 언변이 뛰어나 어른들과 정치 얘기도 스스럼없이 해내며 그림이나 글 등 창의력이 폭발하는 똑똑한 아이 었기에 단 한 번도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을 거라고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제안은 우리 가족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선생님의 의견을 무심코 넘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올챙이 아빠와 이 일을 의논했고 남편의 직장에서 지원해주는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처음엔 올챙이의 상담과 진단을 위해 찾아갔는데 [기초 문진표]가 내 손에 쥐어졌다.
처음 임신을 했을 때 나의 느낌과 주변의 반응, 육아하면서 힘들었던 부분, 아이의 개월 수에 따른 신체발달 등등 디테일하게 적도록 되어 있었다.
그랬다. 처음 임신이 계획보다 너무 빨리 찾아왔기에 달갑지만은 않았던 아이...
사실 결혼 초기에는 남편의 직장도 불안정했고 나라도 승진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남편 몰래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다가 결혼 3개월쯤 덜미가 잡혔다.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자기가 무능력해서 피임한 거냐 역정을 냈고 그날부터 피임약을 중단하기 시작했는데 하필 그날이 배란일이었을 줄이야...
주변에서는 축하가 쏟아졌지만 장본인인 나는 기쁘지만은 않았다.
입덧은 왜 이렇게 심한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노란 위액을 잔뜩 게우고 나오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나날이 몸은 수척해지고 병원에서 아이의 체세포 검사까지 받은 이상 시댁에서는 당장 신문사를 그만두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사직서를 내게 되었다.
신문사에서는 아기 낳은 뒤 언제든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라는 여지를 주었지만 결국 그것이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올챙이가 태어나던 그날도 날짜가 며칠 남았는데 양수가 먼저 터져 버리는 바람에 유도분만을 시도했다.
유아기를 무사히 잘 보내고 올챙이가 만 2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이유도 없이 울고 보챘다.
마치 누군가가 얌전하게 자고 있는 아이를 꼬집은 것처럼, 흡사 발정 난 고양이의 울부짖음처럼 목청껏 울어댔고 그런 양상은 둘째 동생이 태어날 무렵인 만 4세까지 이어졌다.
우리 두 부부에게는 밤이면 매일 찾아오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아이의 이런 행동으로 여러 곳의 병원을 찾아가 봤지만 원인불명, 내지는 아기들이 놀라서 그럴 수 있다며 기응환을 처방해 주는 것이 다였다.
그 사이 나는 두 번의 유산을 겪어야 했다.
어려서부터 올챙이는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것을 좋아했다.
올챙이의 네 살 무렵 멀리 베트남 여행을 가서도 선상 머리에 올라가 장윤정의 '어머나'를 열창하고 외화벌이를 한 이력이 있을 정도로...
그리고 창의력도 뛰어나 빗방울이 떨어지는 풍경을 한참 동안 감상하면서 빗방울이 바닥에 수천수만 개의 동그라미를 쉼 없이 그려낸다는 표현을 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아이...
한번 들은 음악을 그대로 음계로 표현해 내는 아이...
그런 올챙이가 6살 때,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이 생겼다.
동생이 생긴 후 신기할 만큼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자는 것도 불편해하지 않고 새벽에 우는 버릇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그 무렵 큰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놀이터에 나갔던 올챙이가 귓구멍에 총알이 꽂힌 채 울면서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젖을 먹여 동생을 겨우 재워놓았는데 올챙이의 울음소리에 동생도 깨서 울고 정신이 없었다.
자조 지종을 물어보니 놀이터에서 어떤 오빠가 자신의 귀에 총을 쐈다고 했다.
난 우는 아기를 등에 업고 올챙이의 손을 끌고 이비인후과를 향했다.
총을 쐈다는 아이와 그 아이 엄마를 이비인후과로 소환했다.
엄마의 손에 끌려오다시피 병원에 들어선 아이의 이마에선 피나 나는지 덧댄 손수건 위로 벌겋게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그 댁 아이는 어찌 된 일이냐 묻자 놀다가 넘어져서 이마가 찢어져 병원으로 꿰매러 가는 길에 연락을 받고 급히 이쪽부터 왔다는 것이다.
올챙이의 귀를 살펴본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총으로 쏜 게 아닌데요? 총으로 쐈으면 이 정도 입구에 박히지 않고 더 깊숙이 박혔겠죠. 이건 명백하게 그냥 손으로 집어넣은 겁니다."
그때서야 올챙이는 본인이 본인 스스로 총알을 귀에 넣은 것이고 오빠가 총을 쐈다는 것은 거짓이었음을 실토했다.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졸지에 가해자로 몰린 아이와 엄마에게 누차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집으로 돌아와 거짓말을 한 올챙이에게 난생처음 매를 들었다.
너 한 사람으로 인해 도대체 몇 명이 피해를 봤냐며, 어디서 그런 못된 거짓말을 배워왔냐며, 왜 거짓말을 했냐는 것이 나의 물음이었고 아이는 무서워서 그랬다는 대답을 했다.
단순히 무서워서...
예쁜 디즈니 공주가 그려진 올챙이의 우산으로 올챙이의 엉덩이와 종아리를 수차례 내리치며 나도 울고, 올챙이도 울고, 등에 업힌 동생도 울고...
그날의 기억이, 처음 올챙이에게 매를 들던 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해 겨울 무렵, 결혼 전부터 친정에서 키웠던 반려견이 급작스레 죽었다.
친정엄마와 내가 슬픔에 젖어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하며 목놓아 울고 있는데 한편에서 올챙이가 눈물까지 찍어내며 깔깔 거리며 웃었다. 그때의 올챙이의 표정과 몸짓이 뜨악하게 느껴지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웃을 수 있지? 이질적인 느낌이 아이를 향해 물음표를 갖기 시작했던 최초의 일이 아니었나 싶다.
문제는 학령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심해졌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수업 흐름을 끊는 말 끼어들기와 숙제를 안 하고는 했다고 거짓말하고 하려고 했는데 이러저러해서 못했다는 핑계로 사이클이 돌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학교에서 결려오는 전화에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글짓기 대회와 그림대회, 콩쿠르의 상장이 줄을 지었고 성적표에도 늘 매우 잘함이 표시되어 있었다.
올챙이와 찾아간 상담센터에서 기초 난 올챙이와 함께 [기초 문진표]를 작성하며 아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나의 태도, 그리고 여섯 살 거짓말 사건 이후 되풀이된 '사랑의 매'라는 이름의 폭력이 올챙이를 유별난 아이, 문제 있는 아이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챙이와 나 각기 다른 상담 선생님을 만나 ADHD 검사와 각종 심리검사, 상담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