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다비 Dec 30. 2022

까치가 울던 날

기다란 줄을 풀며 천장에서 내려오던 거미

거미 한 마리 기다란 줄을 풀며 천장에서 내려온다. “저 놈의 거미를 죽여라” 엄마가 말했다.  거미 한 마리 기다란 줄을 풀며 천장에서 내려온다.  “그 거미는 죽이지 마라” 엄마가 말했다. 저녁의 거미는 도둑을 부르는 거미니 살려두지 말고, 낮에 내려오는 거미는 손님을 부르는 거미니 죽이지 말라고 한다. 


두 개의 초상화, 두 부자가 1센티 거리를 두고 인자한 미소를 띠고 나란히 벽에 붙어 있다. 눈치 없는 거미 한 마리, 김일성과 김정일 두 부자의 일 센티 거리마저 갈라놓으려 사이에 끼어 있다. 천장에서 10센티도 채 못 내려오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일 센티 간격에 끼여 목적지를 잃어버렸다. 


죽일까? 말까? 아침에 발견했으니 분명 손님을 부르는 거미겠지. 죽일까? 말까? 저녁에 발견했으니 분명 도둑을 부르는 거미겠지. 일 미터, 나의 키다. 손을 뻗어도 거미를 잡을 수 없다. 어쩌면 까치발을 하고, 팔을 어깨와 분리될 힘으로 쭉 뻗으면 잡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어날 수가 없다. 얼굴 피부 가죽은 뼈와 붙었고, 두 개의 광대뼈는 백두산과 한라산으로 나뉘어 튀어나왔다.  눈동자는 당장 튀어나올 정도로 앞으로 충돌됐다. 나의 두 다리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겨울바람의 쐬어 서서히 말라 간 명태처럼 검게 변했으며 주글주글한 가죽이 뼈에 겨우 붙어 있었다.  골반 뼈는 양 옆으로 툭 튀어나왔다. 무릎뼈도 툭 튀어나왔다. 복사뼈도 튀어나온 것이 동내 개가 물고 다니는 돼지뼈와 꼭 닮았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은 만성 기아증이다. 태어나서부터 쭉 영양실조 상태에 뱃가죽은 등의 붙어 있다. 배불리 먹어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깨진 창문 너머로 까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엄마가 오려나? 세 번의 아침이 지나고, 세 번의 까치가 울었다.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 일 센티 거리에 갇힌 거미도 그 자리에 여전히 있다. 삼일만 자고 일어나면 온다던 말은 어린아이들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 낸 어른들의 무책임한 말들이었다.  엄마는 3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쌀알눈이 내린다. 찢어지다 만 비닐이 창문틀에서 분리되지 않고, 아직 붙어 있는 비닐 쪼가리에 쌀알눈이 부딪히며 다다닥-다다닥 소리를 낸다. 다다닥 거리는 저 소리가 화롯불에 올려진 가마솥에서 강냉이가 구워지는 소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고 나는 생각한다. 


몇 날 며칠을 냉기가 올라오는 구들바닥에 누워 있다 보니 시멘트 바닥에 짓눌린 뒤통수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깍지 손을 하고 베개로 삼았다. 이것도 못할 짓이다. 지방이 없는 팔 때문에 머리 무게에 혈관이 피를 제대로 나르지 못하고 감각이 무뎌지더니 하얗게 변해간다. 몸을 옆으로 돌려 태초에 태아의 모습을 하려고 했지만 균형이 맞지 않아 넓은 쪽으로 몸이 기울여 결국 천장을 보며 뒤통수의 고통은 참는 편이 낫겠다 생각했다. 


만성배고픔, 툭 튀어나 온 갈비뼈만 보이고, 배꼽은 보이지 않는다. 깊게 숨을 내 쉬어도 높은 갈비뼈까지 배꼽이 올라오지 않는다. 찢어진 창문으로 눈이 들어오더니 그게 며칠이 지나고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집안 공기도 바깥공기랑 별반 차이 없으니 거의 녹지 않았다. 눈이 쌓이다 허물어 지기를 반복하며 내 열기와 가까운 거리까지 얼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물이 흘러 내 옆구리까지 적셨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눈이 녹으며 흘러 온 물을 혀로 할짝 되며 핥아 먹었다. 사탕맛을 느끼기 위해 창문 가까 벌벌 기어 딱딱해진 눈을 입으로 핥고, 언 얼음을 이빨로 뜯어먹었다. 네발짐승 마냥 양손은 바닥을 지탱하고, 두 무릎은 시멘트 바닥에 바짝 붙였다. 눈을 어찌나 먹었는지 장이 시려웠다. 추위가 배가 되어 입술이 굳어지는 듯했다. 다시 벌벌 기어 원래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윗니와 아랫니가 심하게 요동치며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내 평생소원이 하나 있다면 이밥의 돼지고기 한번 실컷 먹어 보는 거였다. 그리고 그 배부른 시간 속에 갇혀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겨울 밭 뽑히지 않은 강냉잇대 처럼 말라가고 서서히 꺼져가는 내 호흡에 맞춰 김일성과 김정일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파리의 일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