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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짧음 Apr 14. 2024

사랑 1. 오솔길을 돌아 나오는 중입니다

심리테스트에 과몰입하게 되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얼마 전, 직장 동료들과 함께 스키장을 다녀왔다. 2월 중순이라 얼음이 많이 녹아 슬로프가 슬러쉬가 되어 있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곧 폐장을 앞둔 스키장 막차를 알뜰살뜰 잘 즐기고 돌아올 수 있었다.


다들 과음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우리는 맥주 몇 캔을 앞에 두고 새벽 3시가 될 때까지 흘러간 이야기, 지금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대화의 소재가 떨어져 갈 무렵, 가장 어린 후배 하나가 이야기했다.


"혹시, 다들 심리테스트 좋아하시나요?"


나는 원래부터도 심리테스트를 무척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헤어진 그 사람과도 수시로 심리테스트 링크를 주고받으며, 그 결과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단어에 나는 내심 어떤 심리테스트일까 기대가 됐다. 다른 동료들도 모두 심리테스트를 좋아했기에, 우리는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눈을 부릅떴다.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가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오솔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스팔트길입니다. 오솔길은 조금 돌아가야 하지만 상쾌한 숲을 즐기며 갈 수 있고, 아스팔트길은 무척 빠르게 도착할 수 있지만 이외의 다른 특징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길로 가실 건가요?"


[오솔길이다, 오솔길!]


다른 동료들은 '만약에, 이러면', 혹은 '오솔길이라는 게, 이런 건지', 혹은 '아스팔트길은, 저런 건지' 추가 질문이 많았지만, 나는 모두에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2초 내에 빡빡! 대답합시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심리테스트라는 것이 몇 번 하다 보면 질문의 의도가 대충 이런 것이겠거니 예상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들었을 때, 생각이 많아지면 심리테스트가 아니라 심리전이 되기 십상이다.


오솔길과 아스팔트길로 시작한 심리테스트는 생각보다 길었지만 (그래서 생략한다, 중요한 게 그게 아니니깐.), 결국 다시 오솔길과 아스팔트길로 마무리되었다. 초대받은 집으로 갈 때와 다시 돌아 나올 때. 오솔길은 그 사람을 알아감에 있어서도, 잊어감에 있어서도 꽤나 긴 시간을 들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후배는 본인이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게 될 때,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시점에 이 심리테스트를 한 번씩 해 본다고 했다. 이 테스트 하나로 그 사람을 모두 판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가을 이후, 설명하기 어려운 나의 마음과 상태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 웃으며 걸어 들어간 오솔길을 다시 돌아 나오는 중이다. 익숙한 발자국과 익숙한 벤치가 보일 것이다.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추억의 장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 하나하나를 다시 곱씹으면서 반대의 방향으로 돌아 나간다.


세련된 글은 아닐 것이다. 아주 가끔씩, 문득 네가 떠오를 때마다 한 편씩 글을 써 보려고 한다. 어쩌면 지금 사랑하고 있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다가도 나를 사랑하던 네가 떠오를지 모른다. 너를 사랑하던 내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저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돌아 나오며 헨젤과 그레텔처럼. 이 길을 함께 걸었던 너와, 그런 너와 걸을 때 가장 행복했던 나의 조각들을 다시 주워 모아 작은 이야기를 엮어보고자 한다. (헨젤과 그레텔 빵조각 새들이 주워 먹은 거 나도 다 아니까 그냥 넘어가자, 중요한 게 그게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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