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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짧음 Mar 31. 2024

일상 1. 간장남

간장은 찍어 먹을 때도 좋고, 국물을 낼 때도 좋지요.

나는 간장남이다.


무언가 완벽하게 해 내는 데서부터 오는 만족감보다는, 이것도 '할 줄 안다' 정도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얻는 남자다. 많은 취미와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며, 엄청난 하이엔드의 고가 제품도 아니지만 처참한 싸구려도 아닌 장비와 도구들을 보유하고 있다. 쟁여둔 장비와 도구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이것도 '가지고 있다'는 소유에 큰 의미를 두는 남자다. 그렇다고 해서 끈기와 열정 없이 이거 저거 손만 대고 금세 포기하는 남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매우 큰 모욕이다. (그게 어느 정도인지 설명하기는 좀 애매한데, 어쨌든 '할 줄 안다'가 될 때까지는 꾸역꾸역 한다.)


나는 최근에 테니스와 드럼에 빠져 있다. 솔직히 말해서 스스로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만큼 폭발적인 실력향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간장남으로서, 무언가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금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테니스 레슨을 받는 날이면 상의가 땀에 흠뻑 젖을 만큼 뛰어다니고 볼 머신을 쳤다. 토요일이면 코트에 나가 복습과 게임을 했고 (솔직히 매주 나간 건 아니었고, 금요일에 술 먹고 못 나간 날도 많았다.) 배우지도 않은 것을 마구잡이로 예습했다. (그러면 안 된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드럼 레슨을 받는 교습소로 향했다. 강습을 한 시간 받고, 전자드럼을 한 시간 치면서 복습했다. 일요일이 되면 드럼채를 챙겨 다시 교습소로 향했다. 드럼 세트에서 한 시간 연습을 하고, 전자드럼에서 한 시간 연습했다. 그렇게 손목이 부러졌다. (부러진 건 아니고, 근육통을 수반한 똑딱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간장남의 부러진 손목]


또 한 때는 소위 '판때기'라 불리는 보드 스포츠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경기도 파주에 살았던 때였음에도 여름이면 가평을 찾아 웨이크 보드를 탔다. 토요일 아침마다 경기도 북서쪽에서 가평을 가려면 못 해도 7시에는 출발을 해야 10시 전에 여유 있게 도착을 할 수 있다. 그런 고생을 한 덕분인지 다행히 남들보다는 손쉽게 일어나고 또 빠르게 줄을 잡고 탈 수 있었다. 한 손으로 줄을 잡고 웨이크 보드의 노즈 방향을 반대로 바꿀 수 있게 되었을 때, 사실 나는 그 쯤에서 '웨이크보드, 할 줄 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에 같이 배웠던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더 주말마다 고생을 하긴 했다. 여름이 지나면 겨울이 찾아온다. (글의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가을은 생략한다.) 그래서 웨이크 보드를 집어넣고 스노우보드를 꺼내 들었다. 여름휴가를 아꼈다가 겨울에 몰빵을 했고, 그렇게 일주일이 넘게 횡성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낙엽, S자, 비기너턴, 너비스턴, 그리고 J턴을 할 때쯤, 또 한 번 나는 그 쯤에서 '스노우보드, 할 줄 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같이 배웠던 친구의 고집을 꺾지 못해 시즌권까지 끊어가며 스노우보드에 심취했다. 그렇다, 그 친구는 20대 후반에... 아니다, 잘 지내지? 잘 지내렴.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꽤나 오랜 세월에 걸쳐 백일장에 참가했었다. 전문 분야는 산문이었고, 함께 백일장 가는 다른 친구들은 모두 운문이라서 빨리 써내고 도시락 먹는데 왜 나만 이렇게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10-15장을, 그것도 이 땡볕 아래에서 써내야만 집에 갈 수 있는지 깊은 고뇌에 빠지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글 쓰는 것이 꼴도 보기 싫을 만큼 무척 싫었다. 그러나 많은 어른들이 결심하고 실패하고 또 결심하는 그것, 바로 삶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쯤 등장하는 '일기'라는 명분 하에 다시 펜을 들었다. (결국 나도 보편적인 어른이 된 것이 아닐는지.) 그리고 그 일기를 몰래 훔쳐 읽었던 한 여인 (늘 행복하길 바라고, 늘 건강하길 바란다.) 권유와 격려 속에서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게 되었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간장남답게 작가의 서랍 속에는 지금도 절반 정도밖에 쓰지 않은 글들이 몇 편 있는데, 그 정도로는 '브런치, 쓸 줄 안다'라고 하기 부끄럽기 때문에 앞으로 많이 노력해 볼 예정이다.


한 후배가 말해주길,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 종류의 취미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는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것, 또 하나는 나의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바로 나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생각 없이 두드려 치는 드럼도 이미 찍어 먹는 중이고, 테니스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스포츠를 찍어 먹어본 남자다. 결국 나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을 때, 매일같이 머릿속을 채우는 잡념과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고 풀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TMI: 나는 샤워할 때 특히나 많은 생각을 한다.) 


글이라는 것을 얼마나 자주 찍어 먹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네가 살아가는 보편적인 일상 속에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한 편씩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간장을 꼭 찍어 먹는 데만 쓰지 않고 깊은 국물 맛을 낼 때도 쓰듯이, 간간히 쓰겠지만 그래도 그 깊이는 진한 그런 글들을. (써 보려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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