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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센세 Jun 05. 2023

의외의 새해 목표

 작년을 통과하고 올해에 이르기까지 바쁜 일상 속에서 틈틈이 진행 중인 일이 있다. 바로 친구들과 같이 몸에 대한 전시를 만드는 것.


 사람의 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시절부터 연구분야가 착용형 로봇이었으니, 인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하지만 크나큰 착각이었다는 건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크로스핏을 시작하면서 도대체 맘대로 안 움직이는 내 몸뚱이를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착각임을 느끼기 시작했고, 언제나 몸에 대한 관심이 다방면으로 많은 J와의 이야기를 하면서 거대한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다양한 몸의 이야기를 들려준 한의사인 J는 이러한 몸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전시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렇게 나의 취미와 직업을 살려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움직이는 것을 만드는 역할로 ALC라고 붙여진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서 전시준비를 했다. 하지만 바쁜 회사일과 작업물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 회사일에 지친 몸으로 다시 다른 일하러 움직이려고 하니 말을 듣지 않았지만, 일단 시작만 하면 곧 집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머리를 굴리고, 손을 움직이면 어느새 온몸에 피가 쌩쌩 도는 느낌이다. 회사에서 채우지 못한 만드는 과정에서의 순수한 즐거움이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차오른다.


 키네틱 작업물의 초안 회의를 끝내고 다음번 영상 작업물에 대한 회의로 넘어갔다. 영상 작업물은 우리 각자의 인터뷰로 구성하기로 했다.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고 흥미로운지에 대해서. 바로 한번 초안 삼아 실제 인터뷰를 녹음해 보기로 했다. 터치와 함께 “또롱”하고 녹음 중 상태로 바뀌었다. J는 내게 물었다.


 “왜 몸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우리끼리 실제 인터뷰 전 테스트인데도 불구하고, 녹음이 돌아가고 있으니 조금 긴장되었는지 머릿속이 일시정지 되었다.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머릿속을 흔들며 담겨있는 생각을 찾아보았다.


 “우리는 보통 몸보다는 정신이나 마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고 했을 때도 마음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역시 정신적인 측면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의 마음 자체도 몸을 떠나 있을 수 없어요. 그 둘은 밀접하게 얽혀있기에 나 자신을 이해하고, 관계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에 대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먼저 정신적인 이해만 하려고 하는데, 여기에 몸에 대한 이해가 겹쳐진다면 그게 훨씬 더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입체적이고 온전한 이해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측면이라는 점에서 몸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끄집어내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주워 담지 못할 말이 되어 입 밖으로 쏟아졌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말이 아닐까, 뻔한 이야기를 괜히 현학적으로 뱉은 것이 아닐까 싶어 조금 멈칫했다. 그래도 아직 덧붙이고 싶은 말이 생각의 꼬리에 대롱대롱 남아있었다.


 “요즘 이슈가 되었던 전장연 시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몸에서 오는 그런 것들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해서 머리만으로는 이해를 잘 못하는 거죠. 물론 우리가 완전한 이해에는 다다를 수 없겠지만, 그렇게 몸도 같이 생각하는 관점은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우리가 간과해 왔던 사실이고. 그래서 몸을 다룬다는 것은 시의적절한 주제인 것 같아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회 문제들 속에서요.”


 두서없이 이어진 말은 여전히 두서없이 흘러나왔다. 인터뷰를 마치고 괜히 머쓱해져서 머리만 긁적였다. 회의가 끝나고 녹음된 나의 인터뷰를 다시 들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내가 말로 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래 모두 좋은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나 자신은 ‘나의 말’만큼 과연 노력하고 있는 걸까?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걸까?


 한동안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꼽으라고 하면 김연수 작가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말했다. 그 당시 나는 이해가 어려웠고, 이해하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이해와 그 머나먼 간극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을 실패하고 마는 지질한 주인공들처럼.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는다 해도 다다르지 못하는.


 최근에 나온 김연수 작가의 신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구입했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다. 첫 단편을 읽으면서 어딘가 달라짐을 느꼈다. 예전 소설의 실패의 날카로움과 이해의 불가능성이라는 쓸쓸함보다 일말의 가능성에 대한 따뜻함이 더 많이 자리를 채웠다. 묘한 변화에 갸우뚱하면서도, 어딘가 조금 순해진 것 아닌가 불순한 생각을 하다가도, 어쩌면 결국은 같은 방향이었구나 생각했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속의 주인공들 역시 처절하게 실패했을지언정 버텨볼 때로 버티겠다 선언하고 ,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나타날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는 니르바나를 꿈꾼다. 이해의 니르바나보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겠’ 다는 마음이 우리를 가치 있게 만든다.


 인터뷰를 끝내고 생각한 부끄러운 마음 역시 부족함보다 채워나갈 미래를 떠올려야겠다. 여전히 우당탕탕 실수 만발이겠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가슴 뛰는 평범한 미래가 찾아오길 바라면서.


2023. @alc_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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