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 회사의 에디터로 취직하여 수산물에 관한 여러가지 정보들을 검색하고 알아보다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뜻밖의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곳임에도 왠지 모를 친밀감과 그리움이 느껴지는 곳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번에 방문한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이다.
어릴 적 비릿한 향이 싫어 먹지 않았던 음식. 생선구이.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파스타보다는 나물이 가득한 한정식이, 고기보다는 고소한 생선구이가 때로는 더 좋다. 팍팍한 서울살이에 가끔 끼니도 챙겨 먹기 힘이 들 때면 어릴 적 엄마가 구워준 고등어 구이가 생각이 난다. 집에서 구워 먹자니 작은 오피스텔 단칸방에 냄새가 배어 싫고, 시켜 먹자니 만 원이 훌쩍 넘는 부담스러운 가격에 선뜻 주문 버튼이 눌러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옛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차려진 한 상 보다, 추억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어설픈 밥상이 그리웠다. 그리고 카메라를 챙겨 무작정 동대문 작은 골목으로 향했다.
동대문의 작은 골목 어귀를 들어서면 생선구이 가게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동이 채 트기도 전에 이곳의 생선가게 상인들은 연탄에 불을 지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전날 소금에 숙성해둔 수가지 종류의 생선들을 불판에 올리며 초벌한다.
오늘날 패션의 메카라 불리는 동대문은 예나 지금이나 인근 도소매시장, 봉제공장의 상인과 직원들로 정신없이 붐볐던 곳이다. 노동자들의 끼니 해결을 위해 생겨난 백반집들은 산업의 발전과 동시에 하나 둘 사라져 갔고, 생선구이 가게들 역시 소수의 점포들만이 남아 골목을 지키고 있다.
생계를 위해 굽기 시작했던 생선은 이젠 누군가의 추억과 그리움이 되었다. 여러 차례 TV 방송에 나올 때만 해도 정정해 보이시던 사장님은 48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많이 노쇄해졌다.
동대문 생선구이집의 원조 '호남집'은 원래 설렁탕 집이었다. 그러다 손님의 권유로 작은 화로에 생선을 구워 팔기 시작하면서 인근 시장 상인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생선구이 집이 하나 둘 늘어나 지금의 생선구이 골목이 만들어졌다. 당시 생선구이 정식 가격은 600원(참고로 이때는 버스비가 15원이던 시절이다). 20년 전, 종로 입시학원을 다니며 600원으로 끼니를 해결했던 청년이 어느새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이제는 그가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서 자랑아닌 자랑을 하신 사장님께선 흐뭇해하셨다.
이곳 생선구이 골목의 모든 생선구이는 미리 초벌구이 한 생선을 주문과 동시에 연탄불로 다시 구워 나간다. 솔직하게 말하면 특별할 게 없다. 상상하는 맛 그대로이며 매스컴에서 표현하는 '겉바속촉'보다는 그냥 겉이 바삭한 정도니 '겉바'라고만 말하는게 정확할 것 같다.
연탄 향이 그윽하게 입혀져 껍질의 바삭함과 고소함은 일품이었으나, 생선 살의 기름기가 많이 빠져 촉촉함이 부족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직장 앞의 오븐구이 생선가게의 생선구이가 내 입맛에 더 맞다. 사실, 초벌의 가장 큰 목적은 빠른 조리와 잡내를 없애기 위함이기 때문에 특별한 맛이 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맛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하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기대와 실망이 이곳을 꾸준히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의미 없이 만들어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 생선구이 골목이 오랜 세월 사랑받는 이유는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도 배부르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고, 시간이 없는 이들이 빠르고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서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들렀던 이곳 생선구이 가게들이 '맛집'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누군가의 기대에 충족해야 하는 공간이 되는 순간, 이 골목만이 가질 수 있는 본연의 색이 희미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을 향해 달려가다보면 때론 지나쳐온 것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뒤돌아봤을 때,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있는가하면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그저 기억 속 어딘가에 둬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 높고 빼곡한 빌딩으로 가득한 동대문 속,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생선구이 골목은 단순한 밥집의 공간을 넘어 정처없이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우리가 한 번쯤은 뒤돌아 쉬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