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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Jul 12. 2022

엄마에게는 휴무가 없다.

#. 엄마는 일중독인 걸까? 아니면 쉬지 않는 게 습관이 된 걸까?




#1. 엄마는 시장이 가까워 늘 이 동네가 좋다고 하셨다.



내가 사는 동네는 인천의 끝자락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하철역이 없는 이 동네에서 어느새 십여 년을 보냈다.  엄마는 지금 사는 동네가 그나마 시장이 가까워 늘 다행이라고 하셨다. 평일에는 일을 하시고 주말이면 장 보러 다니셨다. 가끔 나도 짐을 들어줄 겸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간다. 


엄마가 자주 다니는 단골 야채가게가 있는데 사장님이 엄마를 알아보시고 갈 때마다 서비스로 더 챙겨주신다. 이번에도 또 배추와 오이를 대량으로 사야 저렴하다면서 대량으로 담는다. 


"또 김치 하려고?"


"겉절이 조금만 하는 거야~ 해봤자 진짜 얼마 안돼"


"사 먹으면 되잖아 날씨도 더운데 힘들게 뭐하러 해" 


"암만 그래도 집에서 만든 거랑은 들어가는 재료가 확연히 달라"


나는 엄마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엄마는 소심한 나와 아빠와 다르게 우리 집 가장 큰손이다. 


햇살이 뜨거운 주말 아침, 눈도 다 뜨지 못하고 화장실로 향하려는데 엄마는 아침부터 바쁘다.


"엄마 뭐해?"


"오이소박이 좀 하려고"


"또?"


"얼마 안돼 해봤자 며칠이나 먹는다고"


"우리도 사 먹자 좀!"


주말에는 좀 쉴 만도 한데 쉬지도 않고 일을 하는 엄마가 답답해서 또 무뚝뚝하게 내뱉어버렸다.



"나 나갔다 올 건데 뭐 필요한 거 있어?"


왔다 갔다 하며 주방에서 반찬을 하는 엄마가 신경 쓰여 예의상 물었다.


"아이스크림"


"어떤 거?"


"살 안 찌는 거"


"ㅡㅡ 엄마 그런 건 없다니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오랜 시간 겪은 엄마의 말을 번역해본 결과 '살은 안 찌고 싶지만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어 그러니까 묻지 말고 사와'라는 뜻인 것 같다. 얼마 뒤 나는 '누가바'를 손에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가끔은 일을 보고 늦게 들어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나 집에 거의 다 와가는데 뭐 사갈까?"


"뭐 사 올 건데?"


"ㅡㅡ 내가 물어봤잖아..."


"글쎄~"


"그럼 그냥 들어간다?"


"매운 새우깡~"


'엄마는 답은 정해져 있으면서 꼭 한 번에 말을 안 해요ㅡㅡ'





#2. 잠 못 이루는 여름... 주방은 에어컨 없는 열대야


 

주말에도 폭염은 계속되었다. 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찬바람인지, 더운 바람인지 모를 선물 받은 미니 선풍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왔어?"


열대야 같은 밖에서 도망쳐 집에 들어왔지만 더운 공기는 밖이랑 다를 게 없었다.


"안 더워? 에어컨 좀 틀고 있지...!"


"계속 주방에 있는데 왜 켜?"


"주방에 있는데 왜 못 켜? 켜놓으면 시원해질 텐데..."


"주방까지 에어컨 바람 안 오니까 그러지 그리고 계속 찬물 만지니까 별로 안 더워"


전기세 걱정 때문인지 엄마는 세 식구가 모두 집에 있지 않는 한 에어컨을 잘 안 켜려고 한다. 여름에 불쾌지수가 높은 건 나를 포함해 많이들 공감할 것 같다.  더군다나 내 방에는 에어컨이 없다... 


나는 내년 여름이 돌아오기 전에 빠른 독립을... 원한다. 휴무날 나는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방에만 있는다. 언제 바뀔지는 모르지만 현재에는 방에서 책 혹은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한 6월 말부터는 더위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집에 있는 게 휴식이 아닌 버티는 혼자만의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때문에 카페로 도망치곤 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랬다가는 영원히 독립이 어려워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서 미루고만 있다. 해가 절정으로 뜨거운 낮시간에 선풍기로 버티던 나는 살며시 엄마에게 물었다.


"거실 에어컨 좀 켤까?"


"안방 들어가서 에어컨 켜고 있어"


"엄마는?"


"콩나물국 끓여놓으려고"


"더운데 낮에는 좀 쉬어 일사병 걸릴 일 있어?" 


"시끄러워! 너도 아빠 닮아가냐?"


"이더 위에 에어컨 이렇게 안 켜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을걸?"


말하고 후회했다. 후회할 짓을 항상 왜 하는지...


'엄마는 뜨거운 불 앞에 있는데 나만 시원하게 있기가 좀...'이라고 무뚝뚝한 내 성격상 곱게 말할 리가 없었다.  날씨 탓에 예민해진 건지  날이선 말투로 중얼거렸다. 별 것 아닌 일에도 괜스레 짜증이 났고 엄마에게 짜증을 낼까 봐 카페로 피신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주된 주제는 더위였고 '우리 집만 에어컨을 잘 못 켜는 건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엄마도 더울 텐데 내색 한번 안 하고 다 큰 딸내미의 투정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식은 부모 마음을 죽을 때까지 모른다는데 나는 언제 철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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