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창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분주한 주말을 보냈다. 일 때문에 서울 근교로 나가게 되었는데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면 금세 시골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일단 가게들의 간판부터 뭔가가 다르다. "풉"하고 웃게 만드는 가게명과 조금은 촌스럽고 정스러워 보이는 색채와 디자인이 눈에 띈다.
차창 밖으로 낯선 풍경을 집중해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인격창고'라는 간판이 보였다. "저게 뭐지?" 하며 더 자세히 바라보니 '안경창고'를 잘 못 본 것이다. 이런, 망할 노안이라니!
오류를 알았음에도 나의 생각은 이미 인격창고에 꽂혀 버렸다.
책 <기억전달자>에서 기억을 마음대로 조종하거나,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 속 인간을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격'도 조종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다면? 그렇다면 지금 사회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낳았는데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격의 아이면 인격창고에 가서 다른 인격을 교체해 오는 세상, 태어났는데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연로하셔서 자녀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교체해 버릴 수 있는 세상, 남편이나 아내를 나와 맞게 수정해 나가서 결국은 다른 인격으로 만들어 버리는 세상(이러면 이혼율은 낮아질 듯)이 도래할 수 있다. 끔찍하다.
그러나 '나'에 대한 인격수정이라면? 지금은 전적으로 '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랜 시간 서서히 변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가능해지는데, 인격창고가 있다면 바로 가서 내가 되고 싶은 인격으로 갈아타서 마음에 드는 나로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게 된다. 바뀐 인격이 싫증 나면 다시 새로운 인격으로 갈아타면 그만이다. 한 세상을 살면서 다중인격으로 살아보는 거다. 매력적이다.
이미 차는 '안경창고'와 멀어진 지 옛날이다. 그럼에도 나는 '인격창고'에 매달려 진짜로 쓸데없는 생각의 꼬리를 붙잡고 있었다. 매력적인 인격창고를 뒤로하며 나는 그 가게를 절대로 들어가지 않으리라고 결론 내리며 이 생각을 마무리했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수많은 노력이 근사한 경험이고, 수많은 시간들이 나의 역사이며, 결점 많은 지금의 인격조차 전적으로 내가 만든 소중한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