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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의 전성시대 Nov 20. 2024

장안의 화제, 당현종과 양귀비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인지라 역사소설이나 역사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반복해 보는 영화들이 꽤 있다. 그중 <양귀비:왕조의 여인>이라는 판빙빙이 나오는 영화는 5번을 넘게 시청했다. 일반적으로 당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악녀로서의 양귀비를 이야기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악녀가 되기까지의 인과적인 스토리가 있어 생각하며 보기 좋았다. 더구나 양귀비 역의 판빙빙 배우가 너무나 예쁘고 현종역의 나이 든 여명도 멋있었다. 

 위진남북조시대를 통일한 수나라가 38년 만에 멸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되어 수도가 지금의 서안, 즉 옛 장안이었다. 얼마나 번성했는지 '장안의 화제'라는 말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동방무역의 중심지로 장안이라는 말 자체가 성공한 도시라는 의미로 우리나라에서 동대문구에 있는 장안동도 여기서 유래가 되었다. 또한 실크로드의 동쪽 끝 도시로도 유명하다. 

 서안이 장안인 줄 모르고 갔다가 알게 되어 "꺅"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내가 진나라뿐 아니라 수. 당의 수도까지 오고만 것이다. 그래서 곳곳에 '실크로드'라는 단어들이 보였던 것이고, 하물며 공항의 카페이름조차 <실크로드>였던 것이다. 병마용갱을 보기 위해 가야 하는 지하철 역이름조차 <화청지>였다.  이곳은 당현종이 애첩 양귀비를 위해 만든 휴양 온천지다. 그리 기대 없이, 가다 들르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게다가 비까지 오고 있어 우비를 입고 처량하게 관람해야 하는 고로 휙 하고 얼른 돌고 갈 생각이었다. 


 입구에 웬 동상들이 이리 많은지 여기저기 현종과 춤추고 있는 양귀비의 동상이 있어 다소 산만하고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적 시각으로 출발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없었고 기온도 기분도 으스스했다. "선생님, 들어갔다가 쓱 보고 얼른 갑시다." "네네 몇 개만 보고 가요." 그렇게 우린 얼굴 스캔을 당하며 아무것도 모른 채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경관이 장관이었다. 가을빛으로 물든 산등성이와 고전 속 역사가 어우러져 빗속에 촉촉하게 빛나고 있었다. 연못과 버드나무와 작은 나무다리들이 마치 옛 중국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산과 비와 고즈넉한 전각과 정자들, 곳곳의 여러 색의 꽃들까지 커다란 정원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더구나 온천이 나는 곳이라 온천물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가 그곳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중쌤 피셜 이곳은 <서안사건>의 주무대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처음 들어봤는데 1936년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심각했을 무렵, 일본제국주의는 점차 중국땅을 넘어 진군해 오고 있었다. 외세가 침입하는데 집안싸움만 하는 것을 보다 못한 당시 국민당 북동군 총사령관 장쉐량은 공산군 토벌을 독려하려 서안 화청지에 머무르고 있던 국민당 총수 장제스를 감금하고 국공내전의 중지 및 항일전선을 구축하기로 한 사건이 바로 서안 사건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장제스가 감금되었던 숙소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들어 준 목욕탕과 장제스가 목욕탕으로 쓴 욕조가 비슷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고대와 현대가 함께 공존하는 느낌이랄까? 교토에 갔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경주나 안동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어디에 렌즈를 대던 그냥 농익은 가을이 찍혀 나왔다. 이 풍경에 묻어가려 나는 렌즈 속으로 슬쩍 들어가 자연의 하나가 되고 싶었다. 

 <화청지>는 나에게 덤이자 보너스였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곳이라 생각했으나 비 맞으며 봐도 너무나 아름다웠던 보너스였다. 돌아와서도 촉촉한 그곳의 향내와 분위기가 간간히 생각난다. 누가 뭐래도 현종이 양귀비를 절절히 사랑했음을 공기와 돌과 물과 나무가 기억하고 있기에 그곳을 지나치는 모든 손님에게도 그 사랑의 처연함이 묻어나서 그런 것은 아닐까!


화청지의 냄새가 잊히기 전에 <양귀비:왕조의 여인>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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