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 가족여행으로 이탈리아를 방문하며 어릴 때부터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폼페이>를 가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세계사 공부할 때나 <폼페이 최후의 날> 영화를 보면서, 폼페이 소개 책자를 읽으며 그곳에 가게 되기를 오랫동안 꿈꿔왔었다.
드디어 그곳에 도착해 차에 내려 그 땅을 밟으며 '내가 꿈을 이루었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났고 가슴에 손을 얹고 그 감동을 고스란히 느꼈다. 나는 말의 힘을 믿기에 늘 하고 싶은 것들을 자주 말로 표현하는 편이다.
진나라 진시황에 대해 수업할 때마다 <병마용갱>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갈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패키지 관광처럼 다녀오고 싶진 않았다. 조용한 감동 속에 진중한 여행으로 가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중국어를 너무나 잘하는, 중국에서 살다 온, 현지인 보다 더 현지인 같은 중국어 선생님과 이곳을 여행하게 되었다. 넉넉하게 3박 4일의 여정으로 출발했으나 마지막 날에는 하루만 더 있고 싶은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두말할 것도 없이 <병마용갱>은 찬란했다. 사진으로 보던 웅장한 그 모습 그대로가, 이것을 만들던 2000년 전의 진나라 백성들이, 50년의 과거의 세월과 앞으로 계속 발굴하게 될 현재의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안에 있던 병마용들은 매우 세밀하고 정밀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김새가 모두 달랐고 신분이나, 직위에 따라 모두 표현되었으며 감정도 얼굴에 드러나 있을 정도였다.
1 호갱부터 3 호갱으로 나눠져 있으며 각 전시관마다 특색이 있었다. 1 호갱은 병마용갱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 크고 거대하며 많은 병마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도 깔릴 만큼 많아서 빠른 움직임과 센스로 자리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으면 내가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있었다.
(경주 석굴암이나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은 줄을 서서 지나가며 봐야 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2 호갱과 3 호갱은 책으로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발굴의 현장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발굴 중 작업들을 관찰할 수 있었고, 2 호갱에서는 다양한 병마용들을 유리관에 전시해 가깝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면은 많은 인파로 보기 어려워 옆면이나 뒷면을 주로 보고 왔다.
병마용갱을 보려면 1.5킬로를 걸어야 하고, 다 본 뒤에도 1킬로 이상을 걸어서 나와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들어갈 때는 중국의 공원을 느낄 수 있고, 나올 때에는 식당이 즐비해 중국의 먹거리와 살거리 등을 볼 수 있다. 우리도 관람 뒤 나오면서 이곳의 대표음식인 방방면을 먹고 대표 프랜차이즈 <CHAGEE>에서 음료를 마셨다. 이런 경험은 자유여행이니 가능하다. 다시 한번 현지인 같은 중선생님에게 감사한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2000년도 더 전의 역사적 유적에, 하루 사는 것도 버거운 작디작은 내 발걸음을 찍고 온 것이다. 두 개 밖에 안 되는 눈으로 수천 개의 이야기를 눈에 담고, 그곳을 설명하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기에 온 신경을 기울여 듣고, 밀려드는 찌릿한 감동은 마음에 담아왔다. 진시황의 욕망으로 점철된 그의 삶의 한 자락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인간의 헛된 바람의 현실을 보며 유의미한 것에 마음을 두기로 다시 확신한다.
나에게 <병마용갱>은 관광지가 아니다. 내 어린 시절 꿈의 현물이고, 가르치는 역사의 실존이다. 그러니 오랜 시간 가고 싶다고 노래한 것이리라!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그곳을 갈 수 있음에도, 동행할 이가 있는 이 모든 이유로 감사하다.
자, 이제 어디를 노래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