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어느 산 귀퉁이에 핀 꽃

나의 사유에세이 3

by 영자의 전성시대

방학이라 평창에 있는 엄마네로 여행을 왔다. 영월의 맛집을 찾아가는 길, 몇 개의 산을 넘고 긴 동강을 따라 차를 몰았다. 비가 오는 날이라 산세나 물세가 고즈넉하니 꽤 낭만적이었다. 산길을 돌아가는 중에 산 귀퉁이에 아주 작게 피어 있는 들꽃 더미를 보았다. 빠른 속도로 운전했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곳에 조용히 꽃이 피어 있었다. 그때 든 생각, ‘저 아이는 피어 있는 목적이 다르구나! 누가 보는 것에 마음 두지 않고 자기가 피고 싶은 곳에서 오롯이 피어 있어 자기 나름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다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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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르치는 아이 중 하나가 “전 공부든, 노래든, 악기든, 노는 것이든 열심히 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거든요.” 하길래 “그렇구나, 인정받는 느낌, 행복하지, 하지만 내가 나를 인정할 때는 엄청나게 행복하지.”라고 말하며 “남의 인정은 한결같지 않아서 내 기대를 무참히 저버릴 때가 있단다. 그 변덕에 놀아나다가는 나는 없어질지 몰라.” 하며 덧붙였다. 아이가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나는 꼭 말해 줄 의무가 있다.


에릭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으며 소유적 삶을 반성하며 나의 이기에 대해 수정하려 했다. 나의 이기와 어그러진 욕구를 통해 가장 상처받는 것은 ‘나’이기에 내가 나를 위해 다른 삶을 선택해야 했다. 나의 존재만으로 인정하고 아껴주기로 했다. 그랬더니 나 자신이 못마땅해서 입술을 꼭 물던 시간이, 잠들지 못할 만큼 속을 쑤셔대던 상처가 줄기 시작했다. 남이 나에게 관심이 있어 힘들고, 남이 나에게 관심이 없어 힘들던 시간을 버리기로 했다. 대신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렸다.

지금 나는 영월의 어느 산 귀퉁이에 핀 들꽃이다. 예전에는 도시의 공원 안 한가운데에 핀, 눈에 띄는 꽃이길 바랬더랬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느라 내 몸은 너덜거렸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고자 내 영혼은 사라져 갔다. 깨달은 지금, 조금은 건강해진 몸과 영혼으로 영월로 기어들어가 아무도 보지 않는 한 귀퉁이에 자리 잡아 조용히 뿌리내린다. ‘내 꽃이 아름다운가?’에는 무심하게, ‘내가 아름다운가?’에는 집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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