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펼치며

나의 사유에세이4

by 영자의 전성시대

방학이 시작하기 전부터 계획형 인간인 나는 늘 스케줄을 채워놓는 편이다. 방학의 첫날, 생각지도 못한 일로 전개되었다. 엄마가 서울에 올라오셔서 함께 며칠을 지냈는데 일어나자마자 손목 아프시다며 “일어났니? 이리 와서 오이지 좀 짜라.” “헐!” 나름의 로망을 기대하며 일어나서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클래식을 틀어 놓고 명상에 잠긴다던가, 나의 긴 책장을 더듬으며 어떤 책으로 손을 펼칠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그림을 그렸건만 나는 오이지와 사투를 벌였다. 그나마도 엄마가 “에그 이게 뭐니? 물을 꼭 짜야 맛있지. 물이 줄줄 나오잖아.” 하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맛있는 오이지에 아침을 먹었지만.


학기 중에 하루의 시작은 일어나자마자 씻고 바쁘게 화장하며 그 와중에 아침 말씀을 듣고 하루의 성찰을 하며 출근한다. 일찍 가는 편인데도 미리 등교한 학생들이 먼저 와서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가자마자 부터 폭풍 수다를 들어야 하고 겨우 커피 한잔을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아이들 목소리의 배경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기에 한 명 한 명에 집중한다. 아이들이 그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기에 나는 매일 일찍 출근해서 그 아이들에게 내 시간을 내어줌이 아깝지 않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꿈꾸던 일을 시작한다. 식탁에 어제 늦게까지 읽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펼쳐져 있어 따뜻한 물 한잔을 들고 앉았다.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슬픔과 사랑 고백들로 가득한 페이지를 읽는다. 그러면서 왼쪽에서는 밥솥이 칙칙 거리며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오른쪽에는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음을 열정적으로 알리고 있다. 괜찮다.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뿐, 내가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존재들이기에 나는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조용한 클래식을 틀고 열린 창문으로 분주한 아침을 여는 소리들이 들린다. 뒤쪽 창문으로 매미소리도 들려온다. ‘아, 우리 집의 아침 소리가 이렇구나!’ 꽤나 낭만적이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아주 감사할 일이자 이것 또한 낭만적이다. 듣기 싫은 소리들이 간간히 나지만 용서할 수 있다. 왜냐면 지금 내 마음은 낭만적 회복의 탄력성을 제대로 장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펼쳐놓고 꿈꾸는 아침을 맞이한다.

keyword
이전 19화영월 어느 산 귀퉁이에 핀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