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by 영자의 전성시대

한 어머니가 찾아오셨다. 중학교에 간 자녀가 너무 버거워서 상담하러 오신 거였다. 들어보니 아이는 자연스러운 중학생의 모습으로 크게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의 말과 행동으로 크게 상처를 받은 상태라, 이미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고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어 삶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일반적으로 중학생의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은 중년의 나이로 몸에 없던 증상들이 나타난다. 쉽게 피곤해지고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거나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때론 이유 없이 등이 젖을 만큼 열이 오르기도 하고 땀에 흠뻑 절기도 한다. 가장 힘든 것은 아마도 ‘내가 늙어가고 있구나’하는 늙어진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우울감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마음과 현상들을 우린 ‘갱년기’라고 부른다.


나를 찾아온 학부모님도 갱년기 증상으로 안 그래도 어려운데, 아이의 뼈 있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대못을 박고 엄마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다고 고백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묻는 말, “선생님, 갱년기랑 사춘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아이에게 나 갱년기니까 까불지 말라고 했는데 들은 척도 안 하네요.”하신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어머님, 당연히 갱년기랑 사춘기가 싸우면 사춘기가 이기죠.”라고 하니 억울한 표정으로 반문하셨다. “왜요? 내가 지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서 몸도 마음도 늙어서 갱년기까지 왔는데, 제가 지기까지 해야 되나요? 너무 억울해요”하신다. 나는 좀 더 진지하게 대답했다. “억울하죠. 근데 갱년기가 질 수밖에 없어요. 사춘기가 세거나 갱년기가 약해서가 아니에요. 부모가 자녀를 더 사랑해서 져주는 거예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없거든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입니다.”

어머님은 알아들으시고는 돌아가서 아이를 좀 더 이해해 보기로, 그리고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훈련을 해보겠다며 가셨다. 어떤 게임이든 지면 패자가 되고, 이기면 승자가 된다. 그러나 이 게임은 반대다. 아이에게 더 빨리 져주고, 덜 움켜쥘수록 더 승자가 될 수 있다. 더 많이 이해해주고 더 표현해주어서 아이가 다 커버렸을 때,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면 이 부모의 삶은 승리한 삶이자 성공한 삶이다.


안타깝게도 이 진리는 아이를 키우고 있을 때는 알지 못하다가 다 크면 알게 되는 비밀이다. 공공연히 누구나 말하는데도 알아듣기 힘들고, 반신반의하며 알아도 깨닫기 어렵다. 내 주위에도 아무리 말해도 모르다가 뒤늦게 깨달아 후회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어리든지 크든지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다시 말해 부모는 여일 하게 부모여야 한다. 아이에게 부모의 역할을 과하게 하거나 덜하면 문제가 생긴다. 부모답게 아이들을 살피고 필요하다고 하는 만큼의 사랑만 공급하면 된다. 지레짐작으로 더 주거나 덜 주지 말자. 갱년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사춘기의 내 아이를 사랑하기에 우리는 져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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