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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운 선생님

by 영자의 전성시대

나와 사서 선생님은 도서관을 함께 공유한다. 과목 특성상 내 수업은 도서관 활용수업이라 명명하기도 하기에 자연스레 큰 도서관의 반이 교실처럼 세팅되어 전교생이 이곳에서 독서 수업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사서 선생님과는 하루 종일 붙어있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선생님은 많았고 각기 다른 개성으로 그 자리를 이끌어 가셨다.


예전 사서 선생님들은 대체로 아주 젊었고 예뻤으며 생기 있고 일을 빠르게 진행했다. 컴퓨터에도 능해서 가끔은 내가 물어볼 때도 있었다. 전시를 하거나 무언가를 꾸밀 때면 기가 막히게 잘 꾸며서 칭찬이 자자했다. 다만 학기가 거듭될수록 덜 성실할 때도 있었고 학기를 마치지 않고 그만두기도 했으며 어떤 분은 아이들을 덜 사랑하기도 했다. 좀 아쉬운 부분이다.


3년 전에 오신 사서 선생님은 좀 다르다. 출근 전부터 연세가 좀 있으신데 괜찮겠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 나 또한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라니 살짝 긴장하기도 했다. 연세 드신 분들 중 은근 자기 고집을 내세우는 분들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만난 첫날, 이분은 전혀 그런 분이 아님을 감지했다. 레이스 달린 치마에 레이스 달린 양말까지 신은 사랑스러운 분이었다.


만날 수록 그 사랑스러움은 빛이 났다. 잘 웃고 계속 웃고 화가 없으시다. 말씨도 곱고 마음씨도 곱다. 드레스 코드는 더 곱다. 각종 빛깔의 옷을 입고 오시는데 공통점은 다 레이스가 달렸다는 거다. 속옷도 아마 레이스로 만든 거지 싶다. 아침마다 인사할 때면 나도 모르게 활짝 웃으며 인사하게 되는 그런 분이다. 이분도 하던 일을 멈추고 웃음으로 맞아주시고 저녁때 같이 퇴근하면 웃으며 내일을 기약한다.

이분의 가장 큰 장기는 기가 막힌 손이다. 책 밖에 없던 딱딱한 도서실을 푸릇푸릇 식물들이 곳곳에서 잎을 띄우고 가지를 뻗치는 따뜻한 공간으로 바꾸셨다. 본인의 자리는 집에서 가져온 각종 꽃들과 예쁜 화병들로 전시했고 눈을 돌리면 큰 나무들과 공기 청정해 주는 식물이 바로 보이며 편안하고 안정되게 만들었다. 심지어 내 책상 위에도 3개의 화분과 화병이 있다. 어느새 내 자리도 파릇한 식물들로 인해 덜 피곤한 일터가 되었다.


또한 티도 나지 않는 곳까지 청소하며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 먼지가 있으면 안 된다며 부지런히 닦으신다. 아무도 보지 않던 서가 뒤까지 끙끙거리며 닦으시던 모습에 나는 감동받았다. 이건 마음이다. 이분의 마음이 여기까지 닿는 거다. 이곳에, 자신의 일터에, 만나는 이들에 선한 마음이 있어 흐르는 것이다. 고마움과 동시에 참 고운 분이라 생각했다.

컴퓨터에 능하지 않아도, 전시하는 것이 기가 막히지 않아도, 일을 빠르게 하지 않아도 남에게 흘릴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좋은 교사라고 생각한다. 성실하게 꾸준히 자기 일을 해나가며 선한 마음씨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것, 이것이 가장 좋은 교사의 표본이 아닐까? 또한 바람직한 동료의 모습일 수 있겠다. 3년째 깨끗하고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 내시는 겸손한 이분과 일하는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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