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울 아가들의 고급진 디베이트

by 영자의 전성시대

우리 학교는 1년에 한 번 토론대회를 한다. 3~4학년은 일상의 소재로 글쓰기를 하고, 5~6학년은 독서논술로 3권의 책을 읽고 그 속에 숨겨있는 맥락을 찾아 주어진 논제에 맞게 입론을 쓴다. 이 중 잘 쓴 학생들을 모아 토론대회를 열고 거기서 금. 은. 동의 상이 정해진다.


5~6학년 아이들과는 이미 여러 번의 입론 쓰기와 디베이트를 한 상태라 아주 어렵지는 않지만, 초등학생이 논리적인 글쓰기, 주장하는 글쓰기를 쓰기란 당최 쉽지는 않다. 특히 이번 논제는 꼭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로 "내가 인정하는 삶이 성공한 삶인가? 남이 인정하는 삶이 성공한 삶인가?"로 뽑고 3권의 책도 심혈을 기울여 2권의 인문학 도서와 1권의 그림책으로 선정했다.


아이들은 7월부터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질문을 가지고 왔다. 나는 논제는 알려줄 수 없으나 의도는 아이들에게 은유적으로 알려주었고 다양한 예시를 통해 의미를 알아채길 바랐다. 드디어 대회는 열렸고 뽑힌 아이들의 글은 수준 이상이었다. 5~6학년의 글 답지 않게 깊이 고민해 결론을 도출하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근거를 들어 잘 설명해 주었다.


잘 된 입론을 보며 아이들의 토론대회도 기대가 되었다. 6학년이 앞서하고 다음 날 5학년이 했는데 역시나 내 새끼들은 어디 내놔도 부족함이 없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세련된 말투, 예의 있되 날카로운 비판적 의식은 드러났고, 초등 답지 않은 배경지식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반론까지 아이들은 내 가슴을 부풀게 만들었다. 진행을 지켜보며 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 학교에 들어오던 날을 떠올렸다.


지금은 나보다 큰 아이들이지만 1학년 때는 아가 얼굴로 허리에도 안 되는 키에 콧소리 나는 말투로 안아주던 말 그대로 아기였었다. 그런 아이들이 6년간 가르치고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더니 이만큼 커서 저런 지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청소년이 된 거다. 아마도 다시 6년이 지나면 청소년에서 '소'를 뺀 청년이 되어 있겠지! 청년이 된 아이들의 모습까지 그리자니 토론대회는 얼추 끝나가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내가 다 키운 줄 알겠다만 그럼에도 내 지분이 없다고 하면 난 땅을 치고 울 거다. 이것들을 얼마나 이뻐했는지, 눈에 담고 얼마나 관찰했는지, 마음이 어떤지 살피느라 진이 빠졌고, 배가 꼬부라질 때까지 수업했다. 행여 못된 구석이 보이면 최선을 다해 엄히 꾸짖었다. 아이들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관심을 주었으며 내 눈에 띈 힘든 아이를 지나쳐 본 적 없다.


얘들아, 나도 너희를 이렇게 키웠단다. 초등학생들의 이런 고급진 디베이트를 보다가 혼자 울컥하는 나를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디베이트를 보며 평가해야 하는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이없지만 어쩔 것인가? 내 새끼들이 너무 자랑스러운걸, 어느 영화에선 눈 내리는 운동장으로 뛰어가 "오겡끼데스까?"를 외친다지만 난 운동장으로 달려가 "이 아이들이 내 아이들입니다."를 외치고 싶은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박수현 작가의 <나는 갱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