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엄마와 아빠가 한 달 전부터 김장 때문에 한 근심을 한다. 엄마는 다행히 방사선이 암세포와 잘 싸워주고 있으나 두드러기와 발진이 생겨 잠 못 이루는 날들을 보내고 있고, 아빠는 퉁퉁 부은 손과 발, 물을 계속 빼야 하는 무릎, 석회가 굳어 변형이 시작된 발, 거기에 통풍이 심해져 통증이 말이 아닌 상태다. 한 주먹씩 약을 먹는 부모를 보자니 김장이 근심이 아니라 이런 부모의 상태를 보고 있는 게 큰 근심이다.
아무래도 시골로 내려간 게 신의 한 수가 아니라 악수가 아니었나 싶다. 해보지도 않던 농사일에 큰 시골집을 관리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 하고 평생 쓴 손보다 더 많은 손일을 해왔을 터였다. 그러니 엄마 아빠의 관절은 이겨내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 몸으로 부모가 김장을 한다고 하니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나는 더 이상 뺀질거릴 수 없었다.
난 음식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먹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맛있는 걸 가끔 사 먹는 게 훨씬 능률적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김장은 참 소모적이다. 겨우내 먹을 김치를 준비한다고 일주일 내내 장보고 3일을 진종일 노동해야 하는 게 김장이다. 예전이야 먹을 게 없고 김장을 안 하면 먹을 김치가 없어 그렇다지만 지금이야 언제 어느 때나 사서 먹을 수 있는 게 김치다.
물론 김치의 질이 다른 건 맞다. 우리 집 김치는 완벽한 유기농이다. 봄에 심은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 뒷밭에 심은 마늘에 심은 파, 심은 배추에 심은 무, 어느 하나 심지 않은 게 없다. 새우젓과 명태, 오징어 요정도가 그 지역에서 공수해 온 것들이다. 우리 부모님의 시간과 정성과 손때와 발품, 그리고 하루가 아까운 내 부모의 세월을 먹고 자란 소중한 놈들이다.
금요일에 배추를 뽑아 씻고 다듬고 절이는 어려운 일은 부모님과 딸이 다 해놓은 후에 금요일 밤에 도착해 전의를 불태우며 내일을 기약했다. 다음날 결의를 다지며 일찍 일어나 준비했으나 서리가 내린 탓에 해가 바짝 나야 시작할 수 있었다. 계속 움직이는 부모님을 끌고 나와 아침에 여는 몇 안 되는 카페를 찾아 억지로 여유를 보려 보았다. 커피를 수혈하며 오늘 얼마나 힘이 들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처음 해보는 배추 씻고 널어놓기, 겁나 말 안 듣는 오징어 썰기, 양념으로 들어가는 야채 썰어 준비하기, 옆에서는 남자들이 무를 열심히 갈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만이 할 수 있는 김치 육수를 비밀리에 만들었다.(이걸 봐야 내년에 나 혼자 할 수 있는데 놓쳤다.) 얼추 김치 속이 완성되고 배추를 날라 속을 바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점점 말수가 줄어갔다.
지금까지 이 모든 과정을 지나 김장을 해온 부모님께 박수를 보낸다. 우리나라 김장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뽀사질 것 같은 허리와 뒷목을 잡고 야무지게 김치를 완성했다. 가족 모두가 합심해서 빠른 시간에 끝났고 두 집의 김치가 김치통에 예쁘게 들어앉았다. 집안에서는 모두의 로망인 수육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두 개의 배추를 겉절이로 만들어 수육과 함께 먹을 예정이다.
아빠의 손때가 묻은 고춧가루는 참 색이 예쁘다. 농약 한 번을 안치고 만들어 내느라 고생 꽤나 했지만 자식 입에 들어가니 계속 "헤헤헤"거리신다. 엄마는 예쁜 색을 만든다고 앞마루에 매일 고추를 뒤집어 말렸다. 그러면서 "이런 김치는 어디 가서 못 먹지." 하며 자부한다. 맞지, 이런 김치를 어디 가서 먹을 수 있을까? 자식 먹인다고 이리 애를 쓰며 만든 1년짜리 슬로 푸드를 여기 말고 먹을 수 있는 곳은 없다.
이런 문화를 가진 분들이 점점 늙어가고 있다. 이분들이 더 이상 김치를 담지 못하면 이런 정성을 기울여 김장을 할 세대는 점점 없어질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느끼는 이런 정서를 못 느끼고 살아가겠지. 아쉽다. 당장 우리 아이들도 내가 안 하면 이런 맛을, 이런 경험을, 이런 깊은 애정을 못 느끼겠구나! 나도 늙나 보다. 이 노동의 현장이 소중하고 아쉬운 걸 보면.
내년에는 처음부터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그때에는 엄마 옆에 딱 붙어 육수 비법까지 전수받아야겠다. 그래서 후년에는 엄마가 보조로 내가 메인으로 승진해야겠다는 야무진 꿈을 꿔본다. 다행히 내가 맘만 먹으면 음식맛이 꽤나 좋다. 맘을 먹어보기로 다짐하며 내 아이들이 나처럼 부모의 손맛과 마음맛을 느끼며 김치를 먹길 바란다. 어디 가도 먹을 수 없는 내 부모만의 김치맛을 내 아이들에게도 먹여주고 싶다.
김장아, 긴장해라!
내가 다 만들어버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