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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거스르는 낙우송처럼!

by 영자의 전성시대

가을맞이 전주로 가볍게 떠나기로 했다. 토요일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행복한 일탈을 할 수 있다. 많은 여행사에서 전국방방 곡곡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국내 패키지, 굿굿이다. 여러 곳을 살펴보며 목적은 단 하나, 가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면 좋았다. 전주는 여러 번 다녀왔으나 전주 수목원이 확 당겨 선택했다. 예전이면 수목원은 돗자리 깔고 도시락 맛보러 가는 곳이려니 했으나 이제는 자연이 주는 평안함을 맛보러 간다.


밤잠을 설치는 이른 아침의 여정이다 보니 입을 떡 벌리고 자다가 다 왔단다. 이쁜 남편님이 싸준 김밥을 먹어 배를 든든히 채우니 잠이 더 달았나 보다. 날은 얼마나 좋은지 며칠째 오들오들 떨던 추위는 누그러지고 우리 다니라고 그리 따뜻한 햇살을 비추더라. 겉옷은 벗어버리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수목원 탐방에 나섰다. 수목원 안에 있는 풍경을 그대로 사방에서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카페에서 아이스 라테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았다.


청정한 색을 곱게 품은 높은 하늘이 천장이 되고, 농익은 낙엽을 품은 나무들이 사방 벽을 쳐주고, 깊은 사연을 품은 오래된 호수는 나의 병풍이 되어 주었다. 이런 집에서 살면 그 많은 상념과 번민은 날아가고 이들이 주는 넉넉한 풍요와 잠잠한 고요와 채우고도 남는 수요를 가질 수 있으리라! 그냥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원래 걸음걸이의 반도 안 되는 속도로 거닐자니 호수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낯선 나무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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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다 할 정도로 나무 주위의 땅에는 울룩불룩하게 솟구쳐 있는 작은 나무 기둥들이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징그러울 정도로 많이 있었다. 호기심 대장인 일행이 검색하니 '낙우송'이라는 나무로 물가를 좋아해서 물 가까이 서식한단다. 그리고 이 나무는 꼭 숨을 쉬어야 해서 나무뿌리가 흙밖으로 군데군데 나와 직접 공기와 맞닿아 있는 특징이 있다. 이런 나무는 처음 보는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알고 나니 아까보다는 덜 징그럽기도 했다.


자기의 좋음대로 물 가까이, 호흡하고자 뿌리도 바깥에 내밀고 있는 이 아이는 참 일반적이지 않았다. 지 맘대로 살아서 그런지 몸통도 두툼하고 위로도 쭉 뻗어있는 것이 마치 생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넌 참 멋지게 산다."하고 소리 내어 칭찬해 주었다. 지 맘대로 사는 나무가 부럽기도 하고 그리 크게 자란 걸 보니 기특도 하고, 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지혜로운 나무라는 생각도 들고, 흙을 뚫고 나오는 인내와 아픔을 견디고라도 좋아하는 것을 이뤄내는 대단한 나무라 여겨진다.


맞지, 맞다. 인간이든 나무든 생명이 있는 그 무엇이라면 지 좋은 대로 사는 게 가장 잘 사는 게 맞다. 자연이 정해놓은 섭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지 좋은 대로, 흙과 물속에 뿌리를 두고 물속에 있고 싶을 때는 물속에, 산소가 필요하면 땅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살기 위한 투쟁을 하면서도 자신의 좋음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흔들림 없는 우선순위가 참 숙연하다. 그런 생존경쟁 후에 오는 거대한 꼿꼿함이 교만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겸허함으로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되돌아보니 난 얼마나 나 살고 싶은 대로 살았나? 무에 그리 눈치 보고 배려하고 헤아리고 용기 내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좁은 마음으로 오해하며 살았던가! 이렇게 산 시간은 눈을 감아도 돌아가는데 살고 싶은 대로 살았던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남은 여생이라는 표현을 예전에는 참 올드하다 느꼈었는데, 내 남은 여생은 마음대로 살아보고 살아내고 살아가려 한다. 그게 무엇일지, 어디까지일지는 나도 모르지만 물속에서도 흙밭에서도 살아남을 정신력을 가지고 내 마음을 소중히 헤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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