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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발표하다 울어버리기

by 영자의 전성시대

요즘 요시타케 신스케의 <불만이 있어요>로 2학년 활동을 하고 있다. 책 읽기 전에 학생들에게 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오는 과제를 주어 작가의 세계관에 대해 느껴보게 했고, <불만이 있어요>를 읽어주고 책 속 불만과 유머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글쓰기로 나의 불만에 대해 생각하고 마지막 책 속 아이가 아빠를 위해 소원을 비는 장면을 참고하여 나도 누구를 위해 어떤 소원을 빌고 싶은지 적고 발표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역시나 뭘 해도 열심이다. 책을 읽어오랬더니 그림도 그려오고 3권 읽기를 넘어 10권을 읽어가며 재미있어했다. 활동지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친구에 대한 불만을 쓰랬더니 "선생님, 저는 불만이 없는데요?" 하는 아이도 나왔다. 설마 불만이 없겠냐마는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게 없는 천사 같은 아이들인 것이다. "생각을 열심히 하면 무슨 불만이 있었는지 기억날 거야."하고 이야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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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발표 시간에 긴장하기도 하고 설레어하기도 한다. 순서대로 아이들이 나왔고 별의별 소원이 나올 거라 예상했으나 내용의 대다수가 "부모님이 늙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죽지 않고 오래 살게 해 주세요." "우리 아빠는 항상 잘 놀아주고 나를 잘 챙겨줍니다. 아프지 않고 죽지 않게 해 주세요." "부모님이 항상 웃게 해 주세요." "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가 대다수였다.


한 남자아이가 나오더니 "우리 부모님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 매일 음식도 잘 먹고.." 하며 이야기를 이어 가더니 아이는 잠시 조용해졌다. 교실은 정적이 흘렀고 다들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가는 이미 젖어있었고 참으려고 애썼으나 결국은 울음이 터져버렸다.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왜 우는지 물었다. "엄마가 몸살이 나서 지금 많이 아파요. 와앙." 하며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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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를 꽉 안아주었고 아이와 눈을 맞추고 "괜찮아, 몸살은 3일 정도 아프고 나면 다 낫는 거야. 엄마도 조금 지나면 다 나으실 거야. 걱정 안 해도 돼."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젖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들어갔다. 몇 아이를 지나 다른 아이가 나왔는데 그 아이는 할아버지를 위한 소원을 비는데 아이는 시작도 하기 전에 목소리가 떨리더니 입을 꾹 닫아버렸다.


왜 그러는지 몇 번 물어서야 답을 하는데 "할아버지가 건강도 안 좋은데 술중독에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세요. 그런데 말을 해도 안 듣고 계속 술 먹고 담배 피우세요. 우와왕." 나는 이 아이도 안아주고 달래주었다. 다음 반도 엄마를 위해 발표하며 나중에 자기가 어른이 돼서 엄마의 무덤에 매일 편지를 넣어주겠다며 울었고, 한 아이는 아빠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서 걱정된다며 울먹거렸다. 은근 조부모님을 위해 소원 비는 아이가 많아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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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이 이렇게나 슬프고 감동적인 장면이 될 줄 예상 못했다. 자신들의 고백에 울컥하는 조그만 인간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나도 덩달아 울컥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사랑의 마음은 서로 흐른다. 가족에게 사랑받은 아이들은 이렇게 조그만데도 벌써 사랑을 흘려보낼 줄 안다. 내 앞에 이런 사랑덩어리들이 가득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활동을 하며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집에 가서 부모님 보고 싶어요." "감동적이에요." "슬펐어요." "눈물 났어요." "아이들이 가족을 많이 사랑해요." 등등 아름다운 대화 속에 사랑을 나누는 피드백을 들었다.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선생님도 울컥했어. 너희들이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졌단다. 너희들의 이쁜 마음이 사랑이란다. 부모님이 아주 행복하시겠다."


"근데 이렇게 사랑하면서 말은 왜 그렇게 안 듣니?"

"으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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