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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r 06. 2024

봄나물을 손질하는 가장 쉬운 방법

달래장 만들기

겨울인지 봄인지 모를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던 2024년 1월, 봄꽃도 속아 넘어가 꽃망울을 터뜨렸다던데 내 몸의 삼라만상은 속아줄 마음이 없다는 듯 더욱 움츠려 겨울잠에 들었다. 이러다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의지도 의욕도 개미 똥만큼이나 작아질 때 쯤, 그보다 더 작은 무언가 찾아와 내 마음에 살랑인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는 것이 수십 년간 학습된 본능인지, 벚꽃 명소를 주욱 나열한 누군가의 블로그 덕분인지, 단순히 달력 속 3월이라는 숫자 때문인지는 알 턱이 없다. 분명한 건 살랑임을 '봄' 자체로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매년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올해의 내 첫'봄'은 집 앞 마트 전단이었다.

"봄나물 40% 할인"

이 요망한 전단지가 내 마음에 어찌나 알랑방귀를 뀌던지, 꽁꽁 언 마음이 살랑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살랑대니 몸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니 입맛이 잠에서 깨어난다. 입맛이 깨어나니 봉인했던 내 뱃살ㅇ가 아니라, 매일 그게 그거 같던 겨울 밥상이 새로운 봄 밥상으로 차려질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캐오자♪"


어릴 적 엄마가 불러주던 동요를 흥얼거리며 누가 보아도 들뜬 발걸음이 마트로 향했다. 마트 안에는 40% 할인이라 적힌 나물들이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정작 나의 입에선 기운 빠지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마음속 대표 봄나물 '달래, 냉이, 씀바귀' 중 무엇 하나도 할인 품목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 때 와는 사뭇 다른 걸음걸이로 터덜터덜 들고 온 것은 다름 아닌 달래였다. 원래는 냉이를 사고 싶었지만 4,980원이라는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끝도 없이 오르는 물가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울엄니 텃밭에 널리고 널려 눈길도 주지 않던 것에 거의 5,000원이나 되는 값을 치르려니 왠지 아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인되는 걸 사자니, 우리 집 편식 대장 아들내미들이 싫어하는 것들뿐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꿩 대신 닭을 고른 탓일까? 달래 손질을 시작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았을진대 무척이나 지루하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신선도는 왜 이렇게 떨어지는지 평소보다 더 손이 가는 기분이었다. 원래도 나물 손질하는 걸 싫어하지만 그중 제일은 달래인데, 나의 뇌라는 녀석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건지 꼭 손질할 때가 되어서야 "아 맞다 나 달래 손질 싫어했지"라는 한마디만 덜질 뿐이다.

마트도, 달래도, 나의 뇌까지 참말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며 불평이 가득 담긴 손으로 나물을 다듬는데 스마트폰에 반가운 벨 소리가 울린다.


발신자 : 울엄니♡


그냥 딸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다는 엄마에게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마트의 만행과(?) 달래의 잘못을 일러바쳤다.

"엄마, 나 냉이 고추장찌개를 먹고 싶어서 마트에 갔는데 무슨 놈의 냉이가 손바닥 만한 거 한 봉지에 4,900원이나 하는 거 있지! 엄마 텃밭에 가면 바닥에 널린 게 그건데 어휴~ 아쉬운 대로 달래를 사 왔는데 상태가 별로라 다듬는데 손이 더 가는 거야!! 주말에 엄마한테 다녀올걸 괜히 사 와서는......."

숨도 안 쉬며 쏘아는 딸의 말을 한참 듣던 엄마는, 딸 목소리 아주 원 없이 들었다고 호호 웃고는 밭에 있는 냉이 다듬어둘 테니까 다음에 와서 가져가라며 전화를 끊는다.


어린 시절 울엄니는 "말만 하면 다 나오는 줄 아느냐"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생밤을 자주 까주었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당신이 깐 밤을 내 입에 쏙 넣어주는데, 그러면 나는 내가 깐 밤을 우리 꼬맹이 입에 넣어주며 "너만 엄마 있냐. 나도 엄마 있다!"고 농담하곤 한다. 그때 짓는 울엄니 표정과 웃음이 있는데, 방금 통화할 때의 호호 웃음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어딘가 흐뭇하고, 뿌듯하면서도 여전히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게 있다는 안도감이 느껴지는 그런 웃음.


'엄마' 자체로 내게 더 할 수 없는 고마움과 따스함인 것을 모르지 않을진대 늘 내게 더 주고, 주고, 주고 싶어 한다. 당신 딸이 벌써 고등학생 아이를 둔 주부 9단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대파부터 각종 채소와 나물까지 엄마가 준 모든 것은 늘 깨끗이 다듬어져 있다. 다음에 친정에 가면 분명 손댈 곳 하나 없이 손질된 냉이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봄나물을 다듬는 가장 쉬운 방법
'엄마'



달래장

손질할 때엔 온갖 구박을 받아도, 만들고 나면 끝없이 사랑받는 '달래장'. 특유의 알싸하고 씁쓰레한 맛과 향이 없던 입맛도 살린다는 전설이 자자하다. 넉넉하게 만들어 두면 며칠간은 반찬 걱정 없게 하는 구세주이기도 하니 넉넉하게 만들어 활용해보자


 달래장 만들기


달래 손질 한 것 60g, 진간장 6큰술, 멸치액젓 1큰술, 고춧가루 2큰술, 매실청 2큰술, 물 3큰술, 다진 마늘 1/2큰술, 깻가루 3큰술, 홍고추 1개, 청양고추 1개, 들기름 1~2큰술(기호에 따라 참기름도 좋아요)




 달래장 활용


김구이, 두부전, 연두부 간장소스

생깻잎지(물을 추가하여 활용한다)

두부조림

콩나물밥 등 각종 비빔밥

국수 양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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