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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Dec 30. 2021

3-8. 신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다.

신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다. 나에게는 꼭 필요한 일들만 일어난다.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지금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완벽한 때에 저절로 주어진다.


 나의 작은 의식으로 신의 섭리와 계획을 알 수 없기에, 오늘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삶이란, 신뢰를 바탕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결국 삶을 통하여 신의 섭리와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나 자신을‘노예근성’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나를 쉬게 할 수 없었다. 불안했다. 아이가 백일 무렵 일을 찾아 나섰고, 이직으로 인한 공백 기간에 서빙이나 일용직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 암 치료 후에 몸이 회복되기가 무섭게 사업 구상에 전념했다. 말일에 폐업하고, 다음날 바로 입사 계획을 잡은 것만 봐도 얼마나 나 자신을 들들 볶아대며 살고 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코로나로 학교에도 가지 못한 몇 달, 어른이 있든 없든 스스로 알아서 학습하고, 흥미를 찾고, 숙제까지 마무리하는 하늘이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한편으론 챙겨 주지 못한 것들이 많아 미안한 마음이었다. 내가 쉬지 못했다는 것은 하늘이 역시 엄마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는 것일 테니.    


다음 출근까지 2달여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번에 찾아온 레벨업 게임은 ‘쉼’이라고 생각했다. 통장 잔액을 보면 무엇이든 해야 할 것처럼 불안했다. 두 달 동안 보험료 및 공과금, 그리고 채무 등으로 나갈 비용을 계산해보니 잘 계획하면 두 달을 무리 없이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쉬라고 하나 보네, 하늘아, 엄마 두 달 출근 안 한다!!”

“우와! 정말?? 엄마!!, 완전 너무 좋아 엄마!!”      


몇 달 전부터 동생네 가족과 합가를 시작하면서, 복층으로 된 넓고 쾌적한 집으로 이사했다. 각자의 공간이 분리된 집이어서 어른들도 아이들도 매우 좋아했다. 하늘이, 그리고, 하늘이보다 한 살 어린 조카인 수지,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지온이와 함께 두 달의 쉼은 시작되었다.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오다 한 지붕, 위, 아래층에서 살게 된 우리는 서로에게 적응하는 중이었다. 엄마는 졸지에 하늘이뿐 아니라, 두 조카도 챙겨야 했다. 조용하던 집은 매일매일 시끌벅적했다.      


집에서 아이들을 케어해보니,‘참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오늘은 뭐 해 먹지?’라고 고민하는 주부들이 부러웠다. 다음 세상에는 현모양처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저런 고민이나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 생각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이 해 보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다.


6살짜리 지온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보내고, 청소하다 보면 두 녀석들 점심 챙겨 줄 시간이 됐다. 태권도장에 다녀오는 아이들을 맞아 간식을 챙겨 주고 나면, 지온이의 하원 시간이었다. 바로 저녁 준비에 돌입,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게다가 청소한 지 얼마 안 되어, 여기저기 널어놓은 장난감들로 금방 더러워졌다.


 하늘이 하나였으면 휴식 기간이 진정 휴식 기간 같았을 텐데, 그렇다고 무슨 재혼을 한 것도 아니고 조카들까지 돌보는 것에 대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가 하늘이 하나지만, 동생은 아이가 둘이니 간식을 하나 사더라도 내가 손해인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     


하늘이와 전혀 다른 성격의 말썽꾸러기 조카들, 특히 둘째 조카는 넓은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 같았다. 통제 불능, 그 자체였다. 조카들은 재미있고 엉뚱한 나를 무척 좋아하고 잘 따랐다. 그럴수록 나는 고달팠다. 내 콘셉트를 접근하기 어려운 ‘무섭고 살벌한 이모’로 바꿀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늘이 역시 처음 조카들과 함께 살 게 되었을 땐, 매일 조카들과 함께 놀 생각에 좋아했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 나의 관심이 분산되는 것을 몹시 힘들어했다. 막내에게 엄마를 빼앗긴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하면, 막내 꼬맹이가 따라붙어 혼자 있을 시간도 없다며 답답해했다.      




“엄마, 동생들과 함께 살면서, 좋은 점이 훨씬 많아! 물론 힘들 때도 있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하늘이는 나보다 먼저 달라진 환경에 장단점을 발견하고, 조카들과 규칙을 만들어 적응해 가고 있었다. 출근하느라 몰랐지만,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을 사촌들과 어울리며 관계를 통해 배우며 성장하고 있었다.     


한때는 재혼을 생각하며 누군가를 만난적도 있었다. 차라리 비슷한 조건의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을 하는 사람도 봤었다. 번번이 같은 아픔을 반복하는 것을 보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하면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한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생각과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그동안 신이 나를 정말 도왔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피붙이인 여동생의 아이들, 가족이라는 것을 결코 숨길 수 없는 가족력을 지닌 조카들을 돌보며 몇 년도 아닌, 며칠 만에 손익계산이나 따지는 내가 재혼을 했다면? 어쩌면 나의 인생뿐만 아니라, 하늘이, 상대방과 상대방 아이들의 인생마저 불행하게 했을 것이다.  

 

가끔은 제 엄마보다 믿고 따르는 조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와 하늘이’라는, 1차적으로 규정했던 가족의 틀을 내려놓았다. 한 지붕 밑에 사는 모두를 ‘우리’로 받아들였다. 10여 년 만의 휴식은 하늘이뿐 아니라, 조카들, 매일 아이들과 전쟁을 벌이는 우리 엄마,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엄마, 나 꿈만 같아!! 나 사실, 엄마가 나, 수업할 때 간식 만들어 주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 진짜 많이 했어.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이모, 이모가 원래 이렇게 음식을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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