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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Jan 05. 2022

엄마, 당신에게 나는 어떤 딸인가요?

이가 전교 부회장에 당선된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는 분들이 있다.

나의 부모님, 그러니까 하늘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당직이었던 아버지는 회사에서 소식을 듣고 사람들에게 손주 자랑을 늘어놓으셨다고 한다.

그날 밤, 엄마와 나는 늦은 시간까지 하늘이가 잘 자라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고 있는지를 얘기하며 기쁨을 나눴다.


“살다 보니 이렇게 기쁜 날도 있네! 엄마,”


“그러게 말이야.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어.”


“내가  딸 하난 진짜 잘 둔 것 같아.”


“나도 딸 좀 잘 두고 싶다.”


농담처럼 불쑥 던진 엄마의 한마디가 마음을 건드렸다.


엄마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거지? 왜? 엄마 딸도 그렇게 엄마를 기쁘게 해 줬으면 좋겠어?”라며 살짝 감정이 섞인 말투로 말을 뱉어 버렸다.


솔직히 '엄마가 나한테 좋은 엄마였으면, 나도 달라졌겠지?'라는 뼈 아픈 소리를 뱉고 싶은 마음이

훅 올라왔지만, 엄마는 내 딸이 잘되는 것을 누구보다 기뻐해 주는 한 사람이다.


“나도 내 딸로 인해 기쁘고 싶거든!!”

 하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나를 내밀 자신은 없어,

“엄마 덕분에 하늘이가 이렇게 잘 큰 거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문득, ‘엄마에게 나는 어떤 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 같은 딸을 둔 엄마의 심정을 헤아려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그런 디테일한 질문으로 마음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하늘이를 낳기 전까지, 엄마도 나에게 좋은 엄마는 아니었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엄마를 이 세상 누구보다 미워하고 원망했다.

엄마와 나는 마주치면 천적이라도 만난 듯 으르렁거리거나 무시하는 게 편한 사이였다.


머리가 크고 나서는 노골적으로 엄마에게 성질을 부리고 짜증을 부리며 엄마를 무시했다.

엄마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함께 옷을 사러 간 적이 있었는데, 옷가게 사장이 내가 엄마에게 하는 모습을 보고, 참다, 참다, 도저히 못 봐주겠다며 나에게 쓴소리를 했다.


아니, 아가씨 엄마한테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건 아니지? 엄마한테 너무하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무안해서 어찌할 줄 몰라했고, 나는 속으로 '네가 뭘 알아? 네가 내가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알고 이러는 거야?’라며 썩은 웃음을 날렸다.



한 번은 남자 친구와 백화점에서 데이트하고 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있다고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너무 짜증이 났다.

남동생한테만 잘해주고, 나한테 해준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꼭 아쉬울 때만 나를 찾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기운이 없는 목소리로

“철판에 찍혀서 많이 다쳤어.”라고 말을 했지만,

나는 엄마가 다쳤다는 사실보다 데이트를 망쳤다는 것이 중요했다. 남자 친구와 병원으로 가서, 엄마의 다리를 눈으로 순간까지도.


가게에서 철판을 정리하던 중 커다란 철판이 쓰러지며 허벅지에 박혀 버린 것이다.

하마터면, 다리가 절단 날 뻔한 사고였다.

밖으로 흘러내리는 살점을 동여매고, 수술을 대기하는 중이었다.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화부터 냈다.


“그러게 그건 왜, 건드려서 사달을 내!"


나는 참 못된 딸이었다. 엄마가 어린 시절 나에게 했던 그대로 엄마에게 그대로 갚아주며, 나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혼전임신을 하고, 엄마에게 임신 사실을 고백하던 날

이 아빠와 퓨전 한정식집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나의 임신 소식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상도 못 한 일이라고 하셨다.


“혜진아, 나는 네가 그럴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정말 슬퍼 보였다.

찜질방에 간다며, 친구네 집에서 잔다며, 외박을 수도 없이 했었는데

엄마는 그 모든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 생활은 오래되지 않아 끝나 버렸고,

얼굴 반쪽에 멍이 들어 진단서를 받아 들고,

친정으로 찾아온 내 모습을 보며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이혼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하늘이와 나를 위해 안방을 내어 주었다.



그 이후, 엄마와 나는 어쩔 수 없이 함께해야 했다.

적과 동침 중, 어쩔 수 없이 해버린 화해라고 할까,

엄마는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갈 때도 남편 대신 곁에 있어 주었고, 하늘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갈 때도 함께 해주었다.


이 회사, 저 회사 떠돌아다니며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노력한 모든 것들이 실패로 끝나버려 좌절해 목 놓아 울고 있는 내 등을 두드리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엄마에게 기쁨을 준 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나로 인해 기뻐했던 때, 그건 그때밖에 없었다.

'내가 잘 됐을 때' 좀 더 안정적인 회사에 취업했을 때, 그때마다 엄마는 기뻐했다. 노력한 것을 인정받았을 때도 엄마는 세상 뿌듯해하셨다. 월급이 올랐을 때도 내 주머니가 든든해지면 배부르다고 하셨다.


책을 낸다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엄마는 또다시 나를 응원하며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건 좋은 거라고,

글 쓰는 재능이 있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하셨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바로 곁에 두고,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고 있던 것일까?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엄마, 당신은 크고 나는 작습니다. 나는 당신의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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