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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Jan 10. 2022

나는 그 이름이 그립다.

이름은 영숙이, 그녀는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다. 고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지만, 그녀와 진짜 친해진 것은 2학년 말경이었다. 나는 친구가 없을 때는 별로 없다가, 많을 때는 이상하게도 엄청 많았다. 나를 중심으로 무리가 형성되어 열 명도 넘는 친구를 거느리고 에버랜드로 소풍을 간 적도 있었다. 이 무리에서는 얘랑 친하고 저 무리에서는 쟤랑 친해, 결국 서로 친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뭉쳐서 그룹을 이루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친구들 가운데 간혹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나를 좋아하고, 챙겨주는 친구가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영숙이었다.


키가 크고 통통한 외모에 먹을 것을 매우 좋아하고, 화성에서 수원으로 학교에 다니는 아이였다. 배차 시간이 정해진 버스로 인해 그녀는 항상 첫차를 타고 먼저 학교에 왔다. 반면에 나의 별명은 대학생이었다. 수업 시작 약 10분 전에 교실에 도착하는 게 내 목표였다. 가끔은 목표가 어긋나 1교시 수업 도중 교실로 들어가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께 그렇게 혼나고, 엄마가 두 번이나 학교에 불려왔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다분히 의도가 있는 지각이었으므로.  

                      

영숙이는 그런 내가 학교에 오기만을 기다리는 친구였다. 아침을 안 먹고 그 시간에 오는 나를 위해 집에서 토스트를 만들어 오고, 도시락도 안 싸오는 나를 위해 도시락을 싸 오는 아이였다. 소풍 가는 날에도  김밥을 두 배로 싸 왔다. 영숙이는 알고 보면 재미있고 유쾌한 아이였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무에게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상대에게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주는 스타일이었다.                  

      

까맣고 커다란 눈동자를 총총 빛내며 따뜻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한 번도 표현한 적은 없지만, 영숙이가 내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따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숙이의 통통했던 볼살과 몸의 지방들이 저절로 빠지기 시작했다. 단발머리로 가려졌던 얼굴이 드러나며 그녀의 외모는 이국적이고 늘씬한 숙녀로 변했다. 아무도 그녀가 그렇게 예뻐질거라고는 상하지 못했다. 당사자인 그녀조차도. 영숙이와 길거리를 지나가면 남자들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목을 매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는 서서히 그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그렇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숙이는 도도하고 자칫 싸가지없는 이미지로 변해갔다.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변함없었다.        

                  

그녀와 나는 조금씩 다른 공간에서 살게 되었지만, 자주 만나도, 1년 만에 만나도, 2년 만에 만나도, 나에 대한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영숙이가 첫 번째 이혼을 하고, 두 번째 결혼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나 역시 아이를 혼자 키우며 아이와 함께 그녀의 신혼집에 갔었다. 재혼해서 화려하게 잘 살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달리, 화려하고 콧대 높던 그녀는 다시 펑퍼짐해져 있었다.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재혼해서 얼마 되지 않아 둘째까지 낳았지만,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불행해 보였다.         

      

현실적인 부분에서 남편과 크게 갈등을 겪고 있었다. 특히 큰 아이(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양육과 맞물려 남편과 갈등을 겪고 있었고, 한 부모 가정 혜택을 받겠다고 혼인신고도 미루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결혼에 실패했다는 것을 밝히는 자리에서 그녀는 금의환향이라도 한 듯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재혼한 남편과 도장을 찍은 것은 아니지만, 곧 정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니고 있는 부동산 회사에서 임원인 재력가와 썸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아이들은 친정과 시댁에 맡기고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그녀가 당시 나의 의식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쓴소리도 했다. 그녀의 이름도 더는 영숙이가 아니었다. 개명한 세련된 이름만큼 그녀는 낯선 사람이었다. 한 부모 가정 지원금(당시) 15만 원을 받겠다고 혼인신고를 미루는 여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1년에 3분의 1은  해외에 머물며 세컨드 외제차를 타고,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는 여자로 변해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흘러 광교의 한 일식집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이야기는 온통 새로 생긴 남자 친구에 대한 것이었다. 아파트를 계약하고, 중도금을 내주고, 500이 넘는 카드값을 내준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자리를 잡아 이제는 자신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금팔찌 열 돈은 거뜬히 해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되었다며 모든 면에서 여유로워졌다고 했다. 돈은 있는 사람이 버는 거라고,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오직 부동산뿐이라며 잠시 부동산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당시 나도 재혼을 생각했었고 그래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고 했을 때, 그녀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따위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결혼 조건으로 아파트의 명의는 꼭 공동명의로 하라며, 신신당부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전에 없던 이질감이 느껴졌다.  

                        

“너 잘 돼서 참 다행이야. 돈이 중요한 건 나도 알겠는데, 너 정말 많이 변했다. 예전의 너는 이렇게 말하진 않았는데”       

        

그녀는 내가 하려던 이야기가 불편했는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밥값 계산을 하려는 내게서 계산서를 가져갔다.             

   

“내가 계산할게. 모르긴 몰라도 내가 너보다 몇 배는 많이 벌 거야.”    

            

그녀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나는 다니는 회사도 망하고 남자 친구와도 헤어지는 등,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취업 사이트를 뒤적이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보며 전전긍긍을 했지만,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연락이 오는 곳이라고는 정체불명의 부동산 회사들뿐이었다. 혹시 몰라, 부동산 회사에 다니는 영숙이에게 면접 제의가 들어온 곳들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업체의 정보를 물어보려고 카톡으로 연락을 했다.


             

그녀는 땅을 보러 이동 중이라고 했다. 업체명을 듣자, 웃으며, 아는 곳이라고 했다.    


           

“경험해 볼 만하긴 해. 가서 월급만 받고 땅 사라고 하면 땅은 사지 말고 나와.”      

         

 “그럼 여기 이상한 곳이라는 거네?”        

        

“그래서 땅은 사지 말라고 하는 거야. 근데, 그런 데서 힘들게 배우는 게 도움이 되긴 해”

               

 몹시 서운했다. 그녀가 전형적인 기획 부동산인 인 줄 알면서도 나에게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      

예전의 그녀였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싫으면 내 밑으로 오던가? 내가 바닥부터 알려줄게. 나도 바닥부터 배웠으니까. 나한테 배우면 어디 가서 사기는 안 당할 거야.”           

     

그녀의 말에 더욱 불편해진 심기를 내비쳤다.         

        

“네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얼마나 잘 나가는지 모르겠지만, 너 돈 좀 번다고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난 친구에게 그곳에 대한 평가를 물어봤을 뿐이지, 부동산 업자에게 물어보는 게 아니었어.”                         

몇 마디를 더 주고받으며 서로 감정이 상했다. 다시는 서로를 찾지 않을 만큼.

      

그리고, 몇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녀가 떠오를 때마다 그녀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보며 곱씹었다.

당시 내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를  아니꼽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물론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보다 세월 속에서 변해가는 그녀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녀가 영원히 소녀 시절, 샌드위치를 숨겨두고 나를 기다리던 영숙이 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나의 마음에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그녀가  나에게만 다른 마음을 내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것을.

그녀의 이름이 더는 영숙이가 아니듯이,

나에게 영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멀어진 것은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세월의 흐름 안에선 많은 것들이 그렇게 멀어지고 가까워진다.  우리의 멀어짐도 그런 것이다.  


가끔은 추억 속 그녀가 몹시 그립다.      

그건 어쩔 수가 없다. 복도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던 그 목소리,      

학교에 일찍 좀 오라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고 말하던 그 목소리가 몹시도 그리운 날이다.




이미지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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