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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Jan 19. 2022

혹시, 이런 김수진을 아신다면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친구가 있다.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 그 친구의 이름을 ‘김수진’이라고 부른다.‘ 김수진’이 맞길 바라며, 오래전 I LOVE SCHOOL이라는 소셜 네트워크가 한참 유행했던 시절, 이사 간다던 성남있는 모든 학교에그 이름을 찾았다.


 “혹시, 대지국민학교로 전학 왔다가 3학년 때 전학을 간 적이 있으신가요? ”


답장은 오지 않거나, ‘아니에요’라고 써 있었다

 너무 아쉬웠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쪽지를 보내올 때도 수진이가 떠올랐다. 이름은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글을 쓰기 전부터 눈시울이 먼저 뜨거워진다.


고학년에 올라가기 이전까지 나는 학교에서 존재감이 전혀 없는 아이였다. 친구를 사귀기 위한 노력도, 공부를 잘해보려는 노력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럴 필요도 의욕도 느끼지 못했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가서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가끔이지만, 먼저 다가온 친구들이 있긴 했었는데, 그런 아이들은 나와 우정을 쌓기 위해서라기보다 ‘단기적으로 어울리는 사이’였다. 그런 표현을 써야 하는 이유는, 대게는 그런 사이로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단기적으로 어울렸던 한 친구’가 “학교 끝나고 나랑 놀자”라며 접근해왔다. 동생들을 챙겨야 했기 때문에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는 곳은 우리 집이나, 동생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처음으로 우리 집에 친구가 놀러 왔고, 그날 이후 그 친구는 며칠 동안 우리 집에서 날이 저물 때까지 놀다가곤 했다.


당시 시골 초등학교엔 한 학년에 반이 하나뿐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대부분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우리 언니가 옆집 언니와 동갑이면, 같은 반인 것은 두말할 것 없고,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고, 형편이 어떻고 하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 알게 된 것은 그 친구가 절친과 절교를 한 사이에 우리 집에 왔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화해를 했다는 것, 그렇게까지 요란하게 알려줄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쉬는 시간, 앞을  막아서더니 큰소리로 나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야!! 네 동생들이 얘, 필통에 있는 연필 다 망가뜨렸다며? 얼른 물어내!!”


둘 사이는 화해를 하고 더 돈독해진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함께 놀았던 친구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꽁무니에 서 있었다. 정의감에 불타 나를 몰아세우는 친구의 목소리가 교실 전체를 울릴 만큼 쩌렁쩌렁했다.


“이거 어떻게 할 거냐고?? 니 필통 열어봐?! 남의 걸 이렇게 만들었으면

물어내야 할거 아니야???!! 얘네 엄마가 오랜만에 와서 사준 거래!! ”


“ … 미안해…”


“ 미안하면 다야? 니 꺼라도 내놓으라고???!!!”


그 친구가 우리 집에 마지막에 온 날, 필통을 놓고 갔는데 동생들이 연필을 꺼내서 가지고 놀다 부러트리고 잃어버린 것이다. 정의감에 불탄 친구는 다그치며, 책상 위의 필통을 함부로 열었다. 안에는 몽당연필 한 자루와 반 토막도 안 되는 잿빛 지우개가 덩그러니 들어있었다. 내용물을 확인하자, 둘은 비아냥거리며, 빚 받으러 온 빚쟁이들처럼 나에게 지급 기한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웅성 웅성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https://blog.naver.com/hyo3242/222080747355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전학생이었다. 전학생은 자신의 필통을 내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뚜껑을 열더니 연필깎이로 가지런히 깎아놓은 연필을 한 움큼을 꺼내 쥐고 내밀었다.


“이제 그만해, 연필 몇 자루야? 이 정도면 돼?”


그 아이가 수진이었다. 그 친구들은 수진이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받을까 말까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연필을 쥔 수진이의 팔을 옆으로 밀쳐냈다.


“됐어, 네가 그걸 왜 줘? 얘 동생이 연필을 부러트린 거니까, 얘한테 받아야겠어!!”


수진이는 친구들의 기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굽혀 내 필통에 연필들을 집어넣었다가 꺼내며 말했다.


“이 연필 내가 혜진이한테 주는 거야. 됐지?”


수진이는 태도는 단호했다. 두 사람은 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연필을 받아서 자리로 돌아갔다.





그 이후,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 수진이는 우리 집과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있었다.  수진이는 외동딸이었다. 부모님이 회사에 가셔서 빈집에서 혼자 놀고 있다며 자기 집으로 놀러 가자고 했다. 흔쾌히 내 동생들까지 집으로 초대해, 엄마가 만들어 놓으신 식사와 간식까지 내어 주며 동생들까지 따뜻하게 챙겼다. 혼자 있으면 밥도 잘 안 먹는다고 수진이네 엄마는 자주 김밥을 싸 놓으셨고, 그것은 우리 몫이 되곤 했다.말끔히 비워진 찬통을 보며 엄마가 기뻐하셨다며 활짝 웃었다.


수진이네 집에는 항상 간식거리며 장난감과 인형 등 놀 거리도 많았다. 틈틈이 수진이의 안부를 묻는 엄마의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집전화기가 있다는 사실에 나와 동생은 수진이네 집을 ‘부자’라고 불렀다.

수진이의 아빠는 출장 갔다 올 때마다 학용품 같은 작은 선물을 하나씩 사 오셨는데, 수진이는 자기는 이미 많이 있다며 나에게도 나눠 주곤 했다. 학교에서도 수진이와 나는 단짝처럼 늘 붙어 다녔다. 기억 속 우리는 특별히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있는 것이 편하고 즐거웠다.


어느 날, 2교시를 시작할 때쯤이었을까? 선생님이 수진이를 복도로 불렀다. 수진이가 다급히 가방을 챙겨 나갔다. 선생님은 수진이의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 수진이는 학교에 나왔다.

슬픈 미소를 머금은 수진이는 자리에 앉지 않고, 선생님 곁에 서서 전학 소식을 알렸다. 복도에서는 수진이의 엄마가 수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진이는 짤막하게 그동안 즐거웠다는 인사를 하고는 교실을 나갔다. 나는 멍하니 수진이가 나간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저절로 수진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대문 사이로 흘깃흘깃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수진이가 밖으로 나왔다.


아빠의 회사가 발령이 나서 이곳으로 전학을 온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살고 싶지만, 엄마가 더는 이곳에 살 이유가 없어서 할머니가 있는 성남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수진이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무어라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사 가서 편지를 하겠다고 했다. 엄마가 친구랑 편지를 하면 된다고 했다고 말하며 주소를 물어보았다. 


나는 발로 애꿎은 땅만 파다가, “몰라”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말았다. 마음과는 반대로 심술을 부렸다.


안에서 수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혜진아, 편지할게.”라는 말을 남기고, 수진이는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수진이네 집 대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고 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주소도 모르면서...”


수진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꼭 편지하라고, 학교로 보내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꼭 말하려고 했는데, 보고 싶을 거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수진아,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너무 고마웠어!! 그 말을 꼭 하고 싶었어.
너로 인해, 있잖아, 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수진이를 만났어.
그날 네가 나를 도와줬던 것처럼,
내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천사들이 나타나 나를 도와줬어.
수진아, 가끔은 말이야,
그때 너를 만났던 일들이 마치 꿈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처럼 느껴져.
그 이후 시간이 한참 지나 모두 친구가 됐지만,
아이들은 너를 기억하지 못하더라고.
하지만, 나와 내 동생은 너를 기억해.
수진아. 고마워. 너무 보고 싶다.

수진이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겠지?
그날, 너 정말 멋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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