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진 Dec 08. 2022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언젠가부터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오고 가는 마음 안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언제가 삶을 처음으로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많은 것을 대가 없이 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내가 상처를 주었거나 많은 것을 받고도 미처 깨닫지 못해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상대에게 연락을 했다.  생뚱맞고 부끄러운 일 같았지만,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래서가 아니었다. 마음을 전하고 나면, 마음 빚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회신이 없더라도 내 마음을 받아 주지 않더라도 괜찮았다.


그런데 유독 아직도 그 마음을 잘 표현되지 않는 분이 있다. 바로 '당연함'이라는 옷을 입은 부모님이다. 


출가했던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부모님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그분들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든, 원하지 않는 모습이든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했다.


연애를 했었다. 어린아이가 있는 싱글맘의 연애는 쉽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데이트를 하고 늦게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내 연애를 반대했다. 어떤 날은 마치 '바람이 나서 정신 못 차리는 여자'로 취급하며 독설을 날리셨다. 아이에게 소홀해진 마음에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빠는 엄마와는 의견이 정 반대였다. 나에게 " 너도 니 인생이 있으니, 하늘이는 우리가 잘 키워줄 테니, 좋은 사람 있으면 나가서 살아라, "라며 아버지의 입장을 표현하셨다.


한평생 나에게 보여 준 두 분의 사랑이다. 그 두 분의 서로 다른 사랑 앞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찾아 헤맨 시간이었다. 한쪽에서만 고집스럽게 붙어있다가 이내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반대편으로 이동해서는 똥고집을 부리며 살아왔다.  어쩌면 지금은 그 중간쯤에 서 있는 것도 같다.(그랬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새벽같이 출근을 하시고,  엄마가 차려 준 아침밥은 언제나 조촐하다.  아버지께서 틈틈이 농사지은 완두콩을 넣어 밥을 짓고는, 하늘이는 완두콩을 싫어한다며, 따로 퍼 두셨다. 출근할 채비를 다 끝내고 식탁에 앉아 흰밥 풀이 붙어 있는 완두콩을 한 그릇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대화다.


엄마는 어느새 식탁에서 일어나, 커피 보트에 버튼을 누르고 물을 끓인다. '소금'을 넣어 엄마가 타는 믹스 커피 맛은 희한하게도 너무 맛있다.


" 여기 무슨 호텔이야? 준비 딱하고 나오니 밥 차려 있고, 커피도 있고, 나 진짜 너무 편하게 사는 것 같다. 그렇지?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 "


" 언제까지 늙은 엄마 부려 먹을라고 그러냐? "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엄마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어제저녁 밭에서 일을 하시다가 가시에 깊이 찔린 아버지는 손이 퉁퉁 부어 올라 집으로 돌아오셨다. 병원에 가자고 말씀드려도 극구 사양을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거절을 아님을 알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에 아버지를 모시고 운전을 해서, 병원접수대에 아버지의 존함과 주민번호를 적는 나는, 오래전 그분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다니던 꼬마 아이였다. 어느새 세월이 흘렀고,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이제는 접수대에 내가 서 있다. 시간이 째깍째깍 흐른다는 사실은 나를 너무도 슬프게 한다.


이제야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안 될 것 같다. 그땐 말할 기회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지금, 지금, 엄마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잘 살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하늘이가 나에게 늘 말하듯이,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우리 부모님으로 존재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야지.




진짜 용기를 내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딸아이가 바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