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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Jul 14. 2022

딸아이의 사춘기를 대하는 바람직한 방법

어느덧 하늘이가 12살이 되었다. 내 키를 넘어섰고, 2차 성징과 함께 사춘기를 맞았다.


"엄마, 사춘기라는 걸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거울을 자주 보는 거래"


그랬다. 사춘기라고 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첫 번째가 거울을 보는 것이었다.  내 방, 벽면엔 건물을 지을 때 GX룸 용도로 만든 듯, 커다란 벽거울이 있는데 하늘이는 쉴 새 없이 자신을 감상했다. '감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딸아이의 표정이 정말이지, 그러했기 때문이다.  


가깝던 사촌동생들과의 거리가 생긴 대신, 친구들과 부쩍 가까워졌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스마트폰 사용량도 늘었다. 말수가 평균보다 훨씬 줄어들면서 재잘거림도 줄어들었다.딸아이의 재잘거림이 반가워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 사이에 거리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에서 급격한 변화로 인해  딸아이의'사춘기'에 대해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Beata Dudová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nokia-candy-crush-228963/


"하늘아"하고 부르면, 조르르 달려와 나를 바라보던 아이의 눈은,  더욱 스마트폰을 향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대답을 하고, 힐끗 고개를 돌리는 딸아이를 볼 때면,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뜨겁게 사랑했던 남자의 식어버린 열정, 눈빛, 미소, 권태감 같은 것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처럼,

피해 갈 수 없는 호르몬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을 인정해야 하듯, 갑작스레 찾아온 단절이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만 같았다.  




아이를 존중하는 엄마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에 먼저 인사하고 있는 아이를 마주하고,

가끔은 전화한통 없이 행로를 결정해 버려도 질책이 아닌 회유로 아이를 대할 수는 있었다.


 "엄마가 어디서 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동안은 스마트폰을 하면 좋지 않다네. 뇌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든다고 하더라. 집중력이 떨어지는 습관인 거야"


당연히 이게 통할리 없었다. 엄마의 말이 이제 더는 동기가 되지 않기 시작했다. 엄마처럼 되고 싶다던 아이의 롤모델은 '오은영'박사님으로 변했고, 더는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를 나에게 펼쳐 놓지 않는다. 사춘기 소녀의 세상은 넓지만 좁고, 다양하지만 한정적인 것들 사이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싱글맘이라는 삶을 통해 사랑을 회복했던 이 생에서 나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사춘기 딸아이는 처음이었다. 사춘기 딸아이를 둔 엄마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저절로 '외로움'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하늘이에게 너무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그동안 딸아이만을 바라보며, 나를 외롭게 한 것은 아닐까'


딸아이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 삼으며, 괴로워지는 내가 문제였다. 아이는 오히려 훌륭했다. 온전하게 자신의 세상을 경험하며, 해야 할 일들을 차곡차곡해 나가고 있었다.  2차 성징이 나오는 몸을 거울에 비추며 변화에 적응했고, 자신의 입술에 가장 예쁜 색을 발견해 냈다. 다른 존재들과의 긴밀히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행복해했다. 다양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좀 더 다양한 삶들을 알아가면서도 스스로의 학업을 챙겼다. 추위와 더위에도 불평 없이 학원을 오가며 스스로 공부에 빠져들었다. 학교에서는 방송부 활동과 학교자치회 활동을 소화했고,  2학기 때는 자치회는 참여하지 말아겠다며 사회 활동을 조절하고 있었다.


"엄마, 요즘 내 하루에 대해서 말해 볼게.  일어나서 샤워하고, 밥 먹고 학교에 갔다가 방과 후 하거나 자치회 회의하고, 잠깐 쉬었다가 수학학원 가서 공부하고. 집에 와서 밥 먹고, 다시 태권도 가고, 엄마랑 얘기하거나 게임하면 하루가 끝나"


출근한 엄마를 내내 기다리던 아이는 이제 엄마보다 바빠졌다. 오로지 엄마와 함께하던 주말은 친구들과 시내로 나가서 버블티를 마셨고, 인생 네 컷이 여러 컷 생겼다. 그런 아이가 기특하고 감사하면서도, 내 속이 공허한 것은 몸속에서 품고 있던 아기가 빠쪄나간 후에 그리워지던 태동 같은 것이겠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내가 진정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태동이 그립다고 해서 자궁 안에 아이를 품은 채 살아갈 수 없듯이, 엄마로서의 궁극의 나의 임무는 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문제는 그 존재가 커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애틋해지는 것이다. 애틋함이 갈급했던 시절에, 애써 키워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애틋함을 조절해야만 하는 타이밍이 와 있는 것이다.


엄마와 나의 사랑은 보기 좋게 어긋났었다.  그것은 슬픈 일이었다. 내가 그녀를 애틋하게 사랑할 땐, 엄마는 먹고살아야 한다고 알아봐 주지 않았고, 엄마가 내게 애틋해졌을 때 그녀의 애틋함이 거북하게 느껴지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 내게 애틋해졌지만, 그건 사실 비극이었다.


엄마의 자식 사랑이 결국 짝사랑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생의 전체에서 본다면 안타깝게도 타이밍이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 앞의 소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고 한다.

내 안에서 커져가는 애틋함을 조절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울 것이다.



사춘기
너에게도
나에게도
참으로 빛나고, 아름다운 계절이 되길,


진실로 그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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