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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Jan 16. 2023

차라리 죽었으면 했지만,

괴로움엔 실체가 없다.


형태 없는 괴로움은 여린 몸에 뿌리를 내리고 돌기처럼 솟아오른다.

평생 동안 뽑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까마득한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태풍의 소용돌이에 걸어 들어간다.

차라리 고요한 태풍의 눈 속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음악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Jazz(재즈) 음악 말이다.
내향성이 짙어 응어리진 마음을 말로도 글로도 풀어내는 방법을 몰랐던 어린 날, 연주를 할 때만큼은 묵직하게 끓는 감정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내 세계에 흥건히 몰입했다.


Jazz(재즈)는 말이 많다. 때로는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사근사근하게, 때로는 연설을 하듯 우렁차게, 때로는 화를 뱉듯이 촘촘하고 재빠르게, 때로는 우주를 그리듯 광활하게. 한치의 거짓 없이 더럽고도 깨끗한 마음을 토해낼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그래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굳이 미련하게 떨리는 내 음성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88개의 흑백 건반, 무수한 경우의 수로 만들어지는 화음들 그리고 매혹적인 자태 안, 늘어져있는 현으로부터 튕겨 나오는 우아한 소리는 나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2년 전, 첫 근무지에서 퇴사하던 날 동료로부터 고흐의 책을 선물 받았다. 고흐가 조카에게 그려주었다는 '꽃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이 책의 겉표지를 덮고 있었다. 책의 제목은 '고흐의 인생수업', 부제는 지금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였다.


가난뱅이에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고흐, 그의 초라했던 삶과 반대로 현시대에서 각광받는 그의 작품들. 고흐 또한 그림에 영혼을 바치기까지 직업의 선택에서 여러 차례의 번복이 있었다. 그는 동생 테오처럼 화상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기도 했으며,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기도 했지만 모두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화가의 길로 들어서고부터는 자신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온 인생을 걸었다.


Dear Mother, didn't get round to writing because I was painting from morning till night.

            Letter to mother _ Vincent Van Gogh


Van Gogh Museum | Amsterdam, Netherlands

이 책의 부제는 나를 정확히 관통했다.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때의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결코 고흐처럼은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제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해도 나는 그저 탈없이 평범하게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고흐가 가진 자신을 향한 강직한 믿음과 단 하나를 향한 무한한 마음만큼은 꼭 가지고 싶었다.


나는 괴로움을 극복하는 새로운 방법을 도모해야 했다. 음악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던 방법은 그 마음에 때가 묻어 더 이상 소용없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더 많이 괴로웠다. 나는 생각보다 작은 그릇을 가졌다. 그리고 쉽게 깨지는. 열망했던 길이 나의 길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긴 어둠 속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혼란의 피사체처럼 희끄무레한 시간을 보냈다. 나도 그처럼 인생을 걸고 영혼을 바칠 일을 찾을 수 있을까?


긴 어둠에도 끝은 있다. 순식간에 닫히는 셔터에 플래시가 번쩍이며 터지고 뚜렷한 피사체의 나를 조우했을 때 한 꺼풀 벗겨진 삶을 살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는 때가 있다.

그때부터 도통 어긋나던 것들이 하나씩 꿰어진다.




"하나님을 믿어봐.",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면 힘든 것도 없어."


나는 무교다.

기독교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겠지만 나는 스스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신이라는 존재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에 상당한 괴리감을 느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 상태로 종교를 가졌다가 광적인 믿음에 파묻혀 온전한 자신의 드러내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깊게 파인 상처에 홀로 맞서지 못하여 결국 친한 친구에게 토로했다.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눈물을 한가득 삼킨 채 말했다.


"널 위해 기도할게. 내가 진짜 기도 많이 할게."


그 어떤 말보다도 큰 위로가 된 말이었다. 참된 신앙은 이런 마음이 아닐까. 교인 한 명 늘리는 것에 혈안이 되어 하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간다는 지옥스러운 말이 아닌, 상대를 향한 진실된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말. 자신의 삶에 타인을 오롯이 들이는 것. 타인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받아들이고 함께 감정을 나누는 것.
그 모든 슬픔은 이 말 한마디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또 배웠다. 더 이상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아픔을 알리지 않으리. 사랑만 해도 모지랄 판에. 힘든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며 나의 책임이다.





'괴로움'이라는 단어를 계속 되뇌었다. 괴로움에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7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새 삶을 만들어주신 작명가님께 소포 한 상자를 받았다.

크라프트 종이로 반듯하게 포장된 소포를 뜯으니 새 이름의 뜻이 담긴 작명장, 위로와 사랑이 가득 담긴 손 편지, 그리고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이라는 책이 들어있었다.


작명가님은 만날 때마다 초여름의 햇살처럼 따사롭게 웃으며 반겨주셨다. 마치 슬픔이라는 감정은 모른다는 얼굴로. 하지만 그 해맑은 미소 너머로는 굵직한 사연이 있었다. 작명가님은 어린 시절 떠나버린 엄마, 무관심한 아빠, 계속 바뀌는 새엄마들, 그리고 계모로부터 신체적인 학대를 받으며 참혹한 날들을 보냈다며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하셨다. 내가 느끼는 괴로움과는 감히 견줄 수 없을 만큼. 작명가님은 그 아픔에서 빠져나온 방법을 알려주셨다.


호오포노포노는 고대 하와이안들의 용서와 화해를 위한 문제 해결법. 마법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호오포노포노는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좋고 나쁜 상황들, 사물들, 사람들에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지속적으로 내면을 정화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호오포노포노를 사용하여 정신 병동 전체를 치유한 휴렌 박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각종 범죄를 저지른 중증 환자들이 붐비는 정신 병동을 떠맡게 된 휴렌 박사는 오로지 호오포노포노를 통해 모든 환자들과 병동 직원들을 치유했다. 모든 환자들의 검진표를 하나씩 들여다보며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진심 어린 말을 반복한 휴렌 박사는 끝내 모든 환자들과 병동 직원들을 칠흑 같은 어둠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그 정신 병동은 더 이상 입원할 환자가 없을 만큼 텅 비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휴렌 박사는 우리 모두가 제로의 상태로 돌아가는 내면 정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무교다. 조금 보태자면 불교에 가까운 무교이다. 한 번씩 절에 들리곤 하는데 물고기 모양의 풍경이 내는 청아한 소리와 맑게 찰랑이는 우물, 일정하게 울리는 목탁 소리에 자연스레 마음이 비워지는 느낌을 좋아한다. 속세의 소리에서 멀어져 자연의 소리만 들리는 곳에 나를 놓으면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는 산뜻한 희망감을 받는다.


작년 여름, 불교의 교리 가운데 '공(空) 사상'을 찾아보고 반야심경의 해석을 다이어리에 옮겨 적었다. 호오포노포노와 공 사상은 ‘0’이라는 큰 연결고리가 있다. 모두 각기 다른 말로 치유의 방법을 권하고 있지만 다시 읽고 곱씹을수록 모든 방법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것은 반발하고 재생되는 기억들, 즉 판단, 분노, 화, 짜증 같은 기억들로부터 나온다.
모든 것을 0으로 돌려놓고 영감으로 살아가야 한다.

호오포노포노의 비밀 中


사리자여!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공하기에, 생겨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으며,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느니라.
이렇게 공하기에 물질도 실체가 없고 감각과 인식과 생각과 의식도 실체가 따로 없느니라....
괴로움의 실체가 없기에 괴로움의 원인도 괴로움의 사라짐도 괴로움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도 없고, 지혜가 따로 없기에 얻을 수 있는 지혜 또한 없느니라. 이렇게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찾는 이는 오직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드러나기만을 바라야 하느니라....
그러니 명심하기를,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바로 보는 것만이 가장 신비하고 확실한 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방법이기에 능히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어 진실에 닿기에 헛되지가 않으리라.

반야심경 해석 中

                                                                


호오포노포노의 비밀
반야심경 해석

공(空) = 0 = zero


비워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상황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부모님과 마찰을 빚을 때면 억울하더라도, 진심이 아니더라도 외쳤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또 외쳤다. 괴로움엔 실체가 없다.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다.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 마음들과 함께 루이스 헤이의 365일 긍정 확언집을 구매하여 출근 전 아침마다 쓰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들이 같은 흐름을 타고 있었다.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경험은 내면에서 하는 생각의 외적 결과에 불과하다.

루이스 헤이 긍정확언집 中

 

괴로움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 나는 내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남의 세계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허상, 망상, 우려, 불안, 초조, 질투, 시샘, 좌절, 슬픔, 무능, 우울, 배신, 실망감의 묵은 체증 덩어리를 모두 게워냈다. 0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내 세계를 다시 짓는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진실된 나와 조우한다.

번쩍 터지는 플래시에 선명한 나의 실체가 보인다. 휘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간신히 버틴다고 생각했지만 느려도 조심스럽게 발을 떼고 있었다. 나의 둘레로 온갖 것들이 부딪히고 부서지지만 고요한 태풍의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의 삶은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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