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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퍼 Jul 23. 2024

엄마는 잘 참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혼주의자였다. 

나는 비혼주의자였다. 내가 비혼주의자로 살겠다 생각했던 여러 이유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어릴 때 보고 자란 엄마의 시집살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바라고 바래서 생긴 아이가 아니라 그런지 나는 누구의 축복도 받지 못한 채 엄마의 배에 집을 만들었다. 엄마는 임신 체질이었는지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아이를 배에서 우량아로 키워냈다. 153cm에 50킬로도 되지 않는 몸으로 4kg 딸을 품어냈다. 당시에는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를 해주지 않던 시절이라 엄마는 꼬박 3일을 진통으로 몸부림친 후에야 제왕절개로 4kg의 쭈굴 하지 않은 딸을 품에 안았다고 했다. 


아빠는 그때를 떠올리면 늘 당시 의사를 욕했는데, 진통이 시작된 첫날 제발 수술시켜 달라고 의사에게 빌었는데 의사는 곧 아이가 나올 것 같다며, 자연분만으로도 가능하다고 엄마의 진통을 3일간 방치했다고 했다. 당시 젊었고, 결혼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엄마와 아빠는 가난했다. 살던 단칸방의 보증금을 빼서 병원비를 지불했다고 했다. 


그나마 있던 작은 보금자리도 도무지 세상에 나오려고 하지 않는, 원해서 생긴 아이가 아닌 딸을 세상에 내보내느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엄마의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구들의 밥을 차려야 했다. 아직 장가가지 않은 남편의 남동생 식사도 챙겨야 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서 요리를 배운 적이 없었다. 엄마의 엄마는 몸이 약했고, 음식을 자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엄마의 삶은 관심도 없다는 듯 아빠의 엄마는 이런 것도 안 배우고 뭐 했냐고 엄마를 자주 나무랐다고 했다. 


엄마는 잘 참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말들도, 아빠의 엄마와 아빠의 말들도, 아빠의 누나들의 말도, 아빠의 동생의 말도, 엄마의 언니의 말도, 엄마의 엄마의 말도. 갓 태어난 원하지 않았던 아이의 말조차도 다 잘 참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엄마가 잘 참는 사람이라서 아빠는 엄마를 잘 몰랐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나고 꽤 오랫동안 엄마는 시집살이를 했다. 어렸던 나는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어느 날 엄마와 아빠가 심하게 싸웠고,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워서 장롱에 숨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엄마는 나를 데리고 시댁에서 나왔다. 그리곤 엄마가 친하게 지내던 동네 언니네 집에서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빠가 엄마와 나를 데리러 왔다. 우리에게 다시 작은 단칸방이 생겼다. 


나중에 엄마랑 얘기하다 그때 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잘 참다가 아빠의 엄마가 나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고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빠의 엄마가 내 옆에 물건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엄마에게 나는 원해서 얻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 아이였다. 엄마는 잘 참는 사람이지만,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 아이에게 하는 못된 행동은 참아낼 수 없는 모성애가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나는 그냥 몸으로 아빠의 엄마와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래왔는데, 내가 자라고 나서도 여러 에피소드들이 당연히 많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나에게 결혼은 스스로 선택할 옵션이 아니었다. 비혼을 얘기하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얘기는 남편의 부모님이 외국인이거나, 남편이 외국에 거주하거나, 남편의 부모님이 외국에 거주한다면 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의 비혼은 남편의 가족들을 엄마처럼 참아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결혼을 했고, 배우자도 한국인이고 시댁도 한국에 있다. 심지어 신혼집에서 시댁은 10분 거리에 있고, 친정은 1시간 거리다. 


나는 엄마처럼 잘 참는 사람도 못되긴 하지만, 나의 배우자와 시댁은 내게 참으라고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엄마의 시댁도 무조건 참으라고 하진 않았겠지만. 그래서 엄마는 이제 참지 않는다. 배우자에게도, 배우자의 가족에게도. 이제는 참아낼 이유였던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 엄마 스스로도 적응 중이고, 그런 엄마를 아빠는 성심껏 이해하고 받아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변하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에서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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