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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퍼 Jul 22. 2024

전쟁을 한 번 치러야 평화가 찾아와요

요가 왜 안 하세요?

어릴 때 요가처럼 정적인 운동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곤 내 운동 리스트에 요가나 필라테스는 아예 없는 옵션이었다. 정적인 운동인 것도 그렇지만 나는 애초에 유연하질 못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비교에 취약하게 자란 내게 고개만 돌리면 옆 사람과 비교하는 환경에 놓이는 운동이 요가였으니 좋아할 이유라곤 하나도 없는 셈이었다.


당시 요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던 예전 동료인 현이 원데이 클래스에 나를 초대했다. 딱히 주말에 약속이 없었고 그즈음 요가에 관심이 조금 생기던 터라 흔쾌히 요가원으로 갔다.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여성들만 초대하여 장미꽃을 주며 90분간 수련하는 클래스였다. 다른 것들은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선생님이 한 한마디는 여전히 마음에 남았다. "매트 위에서는 나에게만 집중하세요. 매트 위에서는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생 초보였던 나는 그날 매트 위에서 참으로 많이도 실패했다. 그리고 여전히 옆 매트에 있는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했다. 자주 초라해졌고 가끔 우쭐해졌다. 제대로 된 요가복도 갖추지 못한 초보는 그렇게 요가의 매력에 스며들었다.


전 직장을 다니면서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수 없을 만큼 화나는 일들이 참 많았다. 그러다 문득 매트 위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더 이상 나보다 더 나아 보이는 누군가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불행해지고 싶지 않았다. 바로 집 근처 요가원을 디깅 하기 시작했고, 가격대와 수련시간이 괜찮은 한 요가원을 발견했다. 요즘은 요가원마다 원데이 클래스가 있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9월의 어느 날, 또 회사에서 넘치게 화가 나던 그날 퇴근길에 원데이 클래스를 등록했다. 


활자세라고 불리는 자세를 어릴 땐 장난친다고 참 많이 했던 자세였는데, 내 몸이 나이 먹은 줄은 생각 못하고 어릴 때 잘했으니까 지금도 잘 되겠지 하고 생각 없이 빡 들어 올렸다가 허리에 전율을 느꼈다. 깜짝 놀라 내려와서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곤 그날 바로 3개월 매일반을 일시불로 결제했다. 원데이 후 바로 결제하는 내게 선생님은 "어느 정도 고통을 참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요가할 때는 물론이고, 회사에서 어려울 때마다 조용히 많이도 읊조렸었다. 


주위사람들이 요가 어떠냐고 물으면 나는 늘 "저는 비교하는 걸 멈추려고 요가를 시작했어요. 요가는 정말 남이랑 비교하는 환경에 놓이기 쉽거든요. 애초에 태어나길 유연한 사람들이 있고, 저처럼 뻣뻣한 사람이 있는 건데 고개만 돌리면 나는 이 자세가 안되는데 왜 저 사람은 잘되지? 하면서 비교하게 되거든요. 저는 저한테 집중하고 싶어서 요가를 시작했고,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홧김에 갔던 원데이를 시작으로 7개월간 매일 수련했다. 7개월쯤 되니 아사나 동작들의 이름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고, 안되던 자세들이 되기도 하고 잘 되던 자세들이 안되기도 하는 다양한 경험을 매트 위에서 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이어가기 어려웠던 내가 7개월 동안 평일 수련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매트 위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생활에 좋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련 안내자가 나와 너무 잘 맞는 분이었기에 가능했다.) 


늘 3개월을 결제하던 내가 1개월만 결제하겠다고 말씀드리니, 조심스레 왜 1개월만 등록하시냐고 물으시기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근심이던 표정이 환해지며 축하를 건네주셨다. 그리고 원래 요가는 혼자 집에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니 남은 한 달간 집에서도 혼자 할 수 있는 아사나를 익혀보라고 하셨다. 벌써 요가원 못 오는 게 아쉽다고 했더니, "수련보다 가정을 이루는 게 더 중요하죠." 하시던 선생님과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하고 결혼을 하고, 이사를 해버렸다. (나중에 본가 가면 원데이 가서 인사드려야겠다.)


덕분에 나는 요가를 꽤나 좋아하고, 주변에 요가를 전파하는, 요가하고 싶어서 신혼여행지도 발리로 고르는 사람이 되었다. 결혼과 이사, 퇴사를 핑계로 요가를 3개월 쉬었더니 몸 여기저기서 '너 정말 이렇게 살 거야?'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신혼집이 결정되고 제일 먼저 했던 주변 요가원을 찾아봤으면서, 이사하고 두 달이나 미뤄두었다니. 커피를 마시는데 뒷골이 너무 당기기에 바로 또 홧김에 원데이를 예약했다. 그리고 오늘도 3개월 매일반을 할부 없이 결제했다. 


오랜만에 하는 동작들이 굳어버린 몸이 힘들어했지만, 역시나 행동하길 잘했다. 덕분에 근육통은 오겠지만 상쾌하게 자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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