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퇴직금을 수령하며
퇴직금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마지막달 급여보다 퇴직금을 먼저 알게 되다니. 웬일로 일처리가 이렇게 빠르담? 하는 생각을 했다. 회사 다니면서 프로젝트할 때 그렇게 도움 필요할 땐 본인들 주 업무가 더 바쁘다고 미루고 또 미루고 무응답이더니. 참 아이러니하다.
개인 IRP에 입금 (예정)으로 뜨는 금액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감정들이 들었다. 공공과 비영리의 영역에 있다가 영리로 처음 발을 들였던 회사였다. 처음 입사할 땐 스스로를 후려쳐서 들어갔지만 나올 땐 그래도 스스로 애썼다 할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내 발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전 퇴직금을 받았을 때와는 다른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론, 다시 그 금액으로 내 가치를 증명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생긴다. 물론 그보다 덜 해도 되지만 그보다 더 했으면 좋겠기도 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사회에서 어린 나이도, 적은 경력도 아니니까. (물론 경력이 능력을 전부 증명할 수 없긴 하다)
내일이면 마지막 급여가 들어온다. 한 달 만근을 하고 나온 게 아니라 원래 급여보단 적겠지만 그래도 반쪽자리 마지막 급여와 퇴직(예정) 금액을 잘 아껴서 쓴다면 올해 말까지는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다음 조직을 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일단 6개월은 벌었다.
나는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적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는 그런 내게 "너 그렇게 경력 끊겨 있는 게 네 발목을 잡을 거야."라고 했었는데 아직 크게 발목 잡히진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걸 장점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한 직장에서의 근속이 짧다는 걸로 사회에서 발목 잡힌 적도 없으면서 스스로의 발목만 잡고 있다. 원래 사람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더 목숨걸기 마련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어제는 채용공고를 괜히 찾아보다가 커리어패스를 도와준다는 프로그램을 덜컥 신청했다. 신청하면서 대학 졸업 예정자,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나 싶어서 여러 번 찾아봤는데 딱히 그런 얘긴 없길래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즈음 사회생활을 해보고, 이직을 많이 하다 보니 사실 커리어를 어떻게 이어갈지 설계해 주고 조언해 주는 프로그램은 나 같은 사람에게 더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돈 벌었으니 돈 내고 들어라 그런 건가..
하지만 무언가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이 있더라도 선뜻 지불할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더더욱 어릴 때 부유하지 않게, 누구도 아껴사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아껴 살도록 삶이 세팅된 나 같은 사람에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가성비를 따졌고, 운동 하나를 배우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연봉이 올라도 나는 나에게 투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냥 미련하게 아끼는 방법밖엔 몰랐고,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결핍이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 너무 초라해진다. 무언가를 주고 싶어도 내가 그 사람에게 받았던 것들을 떠올리고, 앞으로 받을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린다. 그리곤 주저하는 마음이 생긴다. 언제쯤 이런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더 이상 돈을 모으지 않아도 불안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그래도 스스로 조금씩 투자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그래서 정말 물질로부터, 주고받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래서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