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한없이 행복하게 해주고 싶을 때

훈제 연어덮밥

by 아이스블루


"너는 내가 담근 간장게장을 참 좋아했지.

네가 온다고 하면 나는 며칠 전부터 시장에 나가 싱싱한 게를 고르곤 했다."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2008년작) 중에서-




연어를 좋아하는 건 우리 집 여자 둘.

정확히 말하면 생연어를 사랑하는 건 딸아이뿐이다.

훈제 연어로 덮밥을 한다면 남편까지 좋아해 주는 메뉴지만, 아들은 생선회 쪽은

영~ 정이 안 가나 보다.

입맛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오직 “고기바라기”다.


내가 처음부터 연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결혼 전에는 물론 아이를 낳고 나서도 한참 동안은 집에서 연어를 사서 반찬을 해 먹은 기억도

없었는데 딸아이가 커가고 자기 반찬을 고를 나이가 되고 나니 이 아이는 '생연어 마니아'였다.

다른 반찬은 필요도 없이 생연어 한 접시에 초고추장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할 정도이니

딸아이에게는 연어가 일종의 ‘소울푸드’인 모양이다.


오랜만에 찾은 대형마트 이벤트 코너에는 '특별가'를 달고 자리 잡고 있는 훈제연어가 눈에 띄었다.

평소에 자주 먹던 상품인데 유통기한이 넉넉하고 할인가도 좋다 보니 오늘 쇼핑리스트 목록에 없고,

계획된 메뉴도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장바구니를 채우고 말았다.

충동구매에 후회했지만 오늘 냉장고를 열어본 후 딸아이의 반응이 그려지며 그제야 연어를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뿌듯해했다.




훈제연어와 곁들일 채소를 준비하면 끝?


그러면 아들이 먹을 것이 없으므로 육류, 살치살까지 있어야 완성이다.




먹거리 종류로 남녀 차이를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일단 우리 집은 연어가 선호도 면에서

여성 쪽의 몰표를 받고 있다.

연애하면서 여자친구에게 80점 정도는 그냥 따고 들어가는 음식으로 <스파게티>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바로 <연어>인 것 같다.

여자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맛의 요소가 따로 있는 것인지…

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억지로라도 먹어보지 않을까?

진정한 딸아이의 원픽을 골랐다면 생연어를 주인공으로 해야겠지만, 품이 적게 들려면 식구 한 사람이라도 더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훈제 연어덮밥> 쪽이 더 낫겠다 싶었다.


특별히 반찬 준비할 필요 없고 연어만 미리 손질해 놓고, 간장을 곁들이면 번거로운 준비과정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연어덮밥이다.

크게 한 덩이 사서 한꺼번에 슬라이스를 하고 밀폐용기에 담아놓으면 2~3번 정도는 나누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든든한 마음이 들지만 어느새 딸아이가 초장과 함께 야금야금 먹어버리고,

한 끼만큼의 식재료를 강탈(?)당한 기분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어차피 가족을 먹이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큰맘 먹고 준비한 걸 간식으로 모두 먹어버리다니...

참 어리석게도 그들의 먹거리로 준비해 놓고 당사자가 먹은 것에도 아까워했다.

단지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달리생각해 본다면 누군가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방법이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해서 실컷 먹게 해 주면 된다.

밥으로든 간식으로든 말이다.

난 이제껏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좋아하는 메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누구든 좋아하는 음식을 예고도 없이 준비해 놨다면,

'나 먹으라고 이걸 해놨네?' 입이 귀에 걸리고 몰래 행복감에 젖어들기에 충분하다.

비록 아무 생각 없이 준비해 놓았을 수도, 때마침 특별세일 기간이라서 싸기 때문에 샀을 수도 있고,

단순히 내가 먹고 싶어서 했을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은 '나'먹으라고 한 것으로 이미 행복한 오해를

해버렸다.

이럴 때는 애써 사실을 설명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오해를 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행복한 착각에 오래오래 빠져있도록.




벌써 행복해진 딸은 초장을 가지러 갔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