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스블루 Nov 09. 2022

기적이 시작된 순간

에필로그


재테크를 목적으로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 한 권을 빌렸다.

제목만 보고 잘못 빌린 그 책은 재테크 책이 아닌 정리 도서였고, 책 한 권이 던져준 그만큼의 틈새를 시작으로 무심하게 쌓아두었던 물건들을 들춰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우연한 사건을 '기적'이라고 까지 다소 과장해서 표현하고 싶은 이유는 정리에 관한 특정한 어떤 책이 주는 의미보다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달리 생각해보면 변화가 가능한 일들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건으로 어질러진 곳 하나 없이 청소도 잘 되어 있는, 언뜻 보면 잘 정리된 집으로 보이는 우리 집이  왜 답답하게 느껴졌던 걸까?  


물건이 너무 많다!



물건이 늘면 수납장이나 수납상자를 마련해 정리는 잘해 넣었지만 꽉 찬 공간은 숨을 쉴 수가 없고 안락해야 할 집은 수많은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변해가고 만다.

지나치게 물건이 많으면 그것에 자리를 빼앗겨버린 공간은 바람이 지날 수도 없고 햇볕이 들 수도 없다.

꽉 막히고 물건들에 짓눌린 무거운 곳이 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물건 정리부터 하라는 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어쩌면 정말 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와 그게 아니라면 대청소 한번 요란하게 했다고 생각하면 그뿐이었으니까.

나에게 별 손해 볼 것도 없는 작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리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바로 실행에 옮겼다.

거실 베란다로 가서 3단까지 꽉 차있는 선반의 물건들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신혼을 함께 보냈지만 곧 대형 TV에 밀려 창고 신세를 지고 있는 12인치 TV에서부터  이사 가는 이웃이 너무 많다며 나눠준 세탁세제 , 이사 올 때 떼어온 헌 도어록 등 아주 못쓰는 물건이라기보다 지금은 안 쓰지만 혹시나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버리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우선 덩치가 큰 가전제품과 철제 물품을 선별해서 고물가게에 내다 팔고, 너무 많았던 가루세제는 쓸 만큼만 남기고 주변 사람들과 나눔 했으며 도어록도 지인에게 주었다.

빈자리도 없던 베란다 선반에는 사실 더 이상 내게 필요 없는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선반 하나를 비워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고 물건을 덜어내야만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처음이 어려웠지 그다음부터는 공간 정리하는 것이 쉽게 느껴졌고 속도가 붙으니 재미도 있어서 가족들이 잠든 후 밤을 새워가면서 정리한 적도 있었다.

하나씩 정리되어 가고  깨끗해지는 집을 보니 어떤 성취감과 함께 의욕도 생기고, 뭔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건을 덜어내고 공간을 시원하게 치우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속의 “짐”도 함께 치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출처  unsplash



처음 물건 정리를 시작하면서 여러 미니멀리스트들의 책을 보며 미니멀 철학이랄지 방법도 따라 해 가며 참 열심히도 물건을 버렸다.

단출하게 꾸민 공간들에 눈이 휘둥글해지면서도 욕실에 물건을 놓지 않기 위해 샤워할 때마다 샤워용품을 들고 들어가야 하는 등의 다소 극단적인 방법들은 나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패스~

물론 한 미니멀 안내서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이지만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다.

내가 따르고 싶은 것은 바로 내 생활에 적용했는데 실제로 해봐야 계속 실천해나갈 수 있는 건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어떤 방법이든 하기 쉽고 나와 맞아야 습관처럼 계속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중요한 원리인 미니멀 라이프의 기본원칙이자 전부인 단순함!!

생활도 머릿속도 단순해야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지는 법이다.

눈에 보이는 공간을 시원하게 치워버리면서 이제 머릿속을, 또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물건 정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것 또한 쓰지 않는 고물들이고 내게서 방치해둘 수 없기에 치우기로 했다.






지금도 친정엄마의 집에 갈 때면 언제나 벌어지는 끝이 뻔한 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오래되고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자는 나에게 “아까운걸 …쯧-” 버리는 거밖에 모른다며 나를 나무라신다.

언제나 같은 다툼이 반복되는 걸 보면 사소한 물건 하나 버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고, 내가 좋다고 남들도 무조건 좋은 건 아닌가 보다.

한 주부의 개인적인 정리 일기일 수도 있는 짧은 매거진을 마무리하면서 덧붙이고 싶은 한 가지 바람이라면 내 엄마도 주변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안고, 지고, 사는 넘치는 물건들에게서 이제는 해방되어 홀가분함을 느끼는 일이다.

이것 또한 선택의 문제이겠지만 최소한 현재 자신의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냥 지나쳐서도 안 되는 일. 바로 나를 정리할 순간이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독서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